[의료분쟁 25시]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만 남는 의료소송’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7분


《병원에 병을 고치러 갔다가 되레 병을 얻거나 심지어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그러나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환자도 의사도 할 말이 많다. 사연은 갖가지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양쪽 모두 이런 결과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 의료분쟁은 많이 일어나지만 정작 이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의료분쟁 정보는 쉽게 공개되지도 않는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의료분쟁의 현장과 그 이후를 되짚어 보는 ‘김현지 기자의 의료분쟁 25시’를 매주 연재한다.》

최근 대전 건양대병원 앞에선 환자 유족과 병원 직원이 동시에 길거리에 나와 피켓과 전단지를 들고 다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49세에 억울하게 죽은 내 딸이 가엽고 불쌍합니다.”(유족) “불법시위 하지 말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판단에 따릅시다.”(병원)

사연은 이렇다. 2월 14일 밤 10시 김모 씨는 구급차에 실려 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의료진은 ‘뇌지주막하출혈’로 보고 수술을 했다. 그러나 김 씨는 수술 후 보름이 지난 3월 1일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뇌부종’이었다.

“기가 막히죠. 죽을병도 아닌데 병원 갔다 죽었으니….” 유족은 병원의 관리 소홀로 뇌부종이 생겨 김 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병원 측은 “우리는 제대로 치료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뇌출혈 시 다량의 피가 나오면 수술 후 동맥이 경련을 일으켜 뇌부종이 발생하곤 하는데 김 씨의 경우가 그렇다는 설명이다.

유족은 생업도 제쳐두고 병원 앞에서 항의시위를 시작했다. 병원은 부검을 하자고 했으나 유족은 거부했다. 유족은 “부검을 할 경우 99%는 병원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 힘센 쪽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병원의 말은 일절 못 믿겠다는 태도다. 병원은 병원대로 시위 및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을 들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의 의료분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갈수록 의료사고가 늘고 있지만 분쟁을 다루는 방식은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는 의료분쟁 상담 문의는 1년간 1만5000여 건, 민사소송은 700건이 넘는다. 외국은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신속하고 합리적인 해결을 도와주는 제3의 중재기관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합리적인 분쟁 해결 방식이 없다 보니 상당수 의료분쟁은 당사자간 합의에 의존한다.

‘합의됐다’는 말이 분쟁의 원인이 밝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사자들은 대개 모호한 상태에서 합의를 본다. 국내 의료분쟁 절차상 합의를 보지 못하면 법정으로 가야 한다. 이는 긴 싸움을 의미한다. 비전문가인 환자 측은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소송이 시작되면 3, 4년은 끌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의료진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김 씨 유족도 결국 병원과 합의를 봤다. 병원은 진료비 일체를 부담하고 부검 결과에 따라 배상을 해주겠다고 제시했다. 유족은 3월 7일 시위를 끝내고 생업으로 돌아갔다. 사망한 김 씨의 남동생은 말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싸울 순 없다. 일도 해야 하지 않나. 병원에 타격을 입힌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掃隙岵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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