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땐 ‘상큼’ 뒤끝은 ‘깔끔’막걸리, 현대인 입맛 잡아라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강하고 묵직한 막걸리의 맛도 첨단과학으로 개량한 누룩을 이용하면 깔끔하게 만들 수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강하고 묵직한 막걸리의 맛도 첨단과학으로 개량한 누룩을 이용하면 깔끔하게 만들 수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개량 누룩(오른쪽). 녹말을 당으로 분해하는 능력이 전통 누룩(왼쪽)의 4배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개량 누룩(오른쪽). 녹말을 당으로 분해하는 능력이 전통 누룩(왼쪽)의 4배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 술 빚는 계절… 전통주도 차별화 바람

따끈한 파전과 알싸한 막걸리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우리 조상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 술을 빚었다. 정성스럽게 수확한 곡식을 시루에 쪄 꼬들꼬들하게 만든다. 여기에 잘게 빻은 누룩을 버무린 다음 독에 넣고 물을 부어 발효시키면 술이 된다.

전통 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제 서구화된 입맛에 맞는 현대식 전통주를 개발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탁주나 약주(청주) 같은 전통 발효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누룩과 효모. 누룩과 효모를 과학적으로 개량하는 게 바로 전통주 현대화의 지름길이다.

○ 우리 발효주 맛의 비결은 누룩

밀을 껍질째 갈아 물을 조금 넣고 되게 반죽해 덩어리로 만들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면 곰팡이가 핀다. 이 덩어리가 바로 누룩이다. 누룩곰팡이는 쌀과 밀, 보리 같은 곡식의 주성분인 녹말을 잘게 부수는 효소(아밀라아제)를 내놓는다. 녹말은 당이 수백 개 연결된 사슬 구조. 효소는 이 사슬을 끊어 당이 하나인 포도당이나 둘인 맥아당으로 만든다.

누룩에는 곰팡이와 함께 효모도 자란다. 효모는 포도당이나 맥아당을 먹고 알코올과 각종 향 성분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이 발효다. 포도당과 맥아당이 점점 많아지면서 생성된 알코올의 함량이 20% 정도 되면 효모가 살아남지 못한다. 전통 발효주의 도수가 20도를 넘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기온이 높으면 효모가 아닌 엉뚱한 미생물이 먼저 자라 술이 되지 않고 상해 버린다. 옛 어른들이 날씨가 추워져야 술을 빚었던 이유다. 요즘에는 효모를 따로 만들어 넣을 수 있기 때문에 계절에 관계없이 술을 제조한다.

○ “일본과 격차 30년”

일본은 100여 년 전부터 전통주를 개량하기 위해 미생물을 연구해 왔다. 농촌진흥청 김태영 박사는 “우리 전통주 연구는 일본에 비해 30년이나 뒤져 있다”고 말했다.

일본 청주를 만들 때는 밀이 아니라 쌀로 누룩을 만든다. 쌀누룩에서 자라는 곰팡이는 아스페르길루스균(고지균). 녹말을 당으로 분해하는 능력(당화력)이 탁월해 요즘은 국내 막걸리 제조업체에서도 이 균을 쓴다.

우리 누룩은 자연적으로 곰팡이를 자라게 하기 때문에 만드는 장소나 시기에 따라 여러 미생물이 함께 섞이게 된다. 이것은 전통주의 맛을 깔끔하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일본은 누룩에 한 가지 곰팡이만 접종시켜 자라게 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깔끔한 맛을 내는 고품질의 누룩을 여러 가지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자극받아 국내 과학자들도 우리 전통주를 차별화하기 위한 독특한 누룩 제조 기술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농촌진흥청에서는 당화력이 전통 누룩보다 4배나 우수한 개량 누룩을 개발했다. 율무나 녹두로도 누룩을 만들었다. 다양한 누룩을 여러 비율로 섞으면 새로운 술을 제조할 수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안병학 박사는 “밀누룩에서 특히 잘 자라는 리조푸스균에 속하는 여러 곰팡이를 분류해 당화력이나 향이 우수한 것을 찾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곰팡이를 골라 술을 만들면 우리만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인이 선호하는 깔끔한 맛과 신선한 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 깔끔한 현대식 전통주로 변신

농림부는 지난달 24일 충북 충주시에서 ‘제1회 한국 전통주 품평회’를 열었다. 전국 시도에서 뽑힌 79가지의 전통주가 열띤 경합을 벌인 끝에 총 17개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심사를 총괄한 김태영 박사는 “뒤끝이 깔끔하지 않고 묵직한 맛의 과거 전통주 이미지에서 벗어난 현대식 전통주가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밝혔다.

대상은 전북 남원시의 오미자 약주인 황진이주에 돌아갔다. 이 술을 만든 농업회사법인 참본의 이강범 전무는 “자체 기술로 개발한 효모로 발효시킨 술에 오미자와 산수유를 우려 넣어 상쾌하고 가벼운 맛을 낸 점이 높은 점수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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