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자생하는 겨우살이는 주로 참나무 계통의 숙주나무에 기생한다. 겨우살이 열매를 따먹은 새나 청서 같은 짐승의 똥이 숙주나무 가지 위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던 씨가 표면의 끈끈한 점성물질로 가지에 달라붙는다.
점성물질 덕에 습도가 유지된 종자는 발아할 수 있게 되고 어린뿌리를 내 가지의 표피를 뚫고 들어가 영양분과 수분이 통과하는 관에 자신의 관을 연결시켜 생활한다. 발아 직후 어린 겨우살이의 뿌리가 어떻게 단단한 숙주나무의 껍데기를 뚫을 수 있는가는 아직 수수께끼다.
숙주나무를 뚫고 들어간 겨우살이 가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시 껍데기를 뚫고 나와 공기 중에 가지를 펴고 잎을 내 광합성을 한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지만 스스로도 광합성을 할 수 있으므로 ‘완전기생’이 아니라 ‘반(半)기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숙주나무에 여러 겨우살이가 자라는 듯 보여도 많은 경우 숙주나무 속에서 연결된 단일 개체다. 숙주나무를 통과하며 뻗어 나간 겨우살이 가지의 전체 길이가 수 m가 되기도 한다.
겨우살이에 드물게 다른 겨우살이가 기생하기도 한다. 새나 짐승의 똥이 겨우살이 가지에 떨어지면 그 속 종자에서 발아한 새로운 개체는 그곳을 숙주나무로 착각하고 마찬가지 방법으로 정착한다. 이렇게 되면 같은 겨우살이인 것처럼 가까이 있는 두 가지가 실상은 완전히 서로 다른 개체인 것이다.
이쪽 겨우살이와 저쪽 겨우살이가 동일한 개체인지, 아니면 한 겨우살이에 다른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것인지를 확실히 가리려면 범죄수사에 쓰이는 ‘DNA 지문법’을 사용하면 된다. 각 겨우살이의 DNA를 조사해 염기서열에 차이가 나타나면 서로 다른 개체라고 판정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비롭게 여기던 겨우살이가 첨단 생명과학 기법을 동원해 조사한 결과 어이없게도 동족과 이방인도 구분 못하는 어수룩한 식물이라는 게 밝혀진 셈이다.
유장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식물세포공학연구실 선임연구부장 jrliu@kribb.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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