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생물학]나뭇가지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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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는 나무 위의 새둥지처럼 둥글게 보인다. 주로 참나무 계통의 숙주나무에 기생하고 있다. 사진 제공 유장렬 씨
겨우살이는 나무 위의 새둥지처럼 둥글게 보인다. 주로 참나무 계통의 숙주나무에 기생하고 있다. 사진 제공 유장렬 씨
평생 발을 땅에 대지 않는 깔끔함, 세상이 모두 얼어붙은 혹한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고고함을 갖춘 식물. 서양에서는 귀신을 쫓는 식물로, 동양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바로 ‘겨우살이(mistletoe)’ 얘기다. 현대의학에서도 항암효과를 인정받았다.

국내에 자생하는 겨우살이는 주로 참나무 계통의 숙주나무에 기생한다. 겨우살이 열매를 따먹은 새나 청서 같은 짐승의 똥이 숙주나무 가지 위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던 씨가 표면의 끈끈한 점성물질로 가지에 달라붙는다.

점성물질 덕에 습도가 유지된 종자는 발아할 수 있게 되고 어린뿌리를 내 가지의 표피를 뚫고 들어가 영양분과 수분이 통과하는 관에 자신의 관을 연결시켜 생활한다. 발아 직후 어린 겨우살이의 뿌리가 어떻게 단단한 숙주나무의 껍데기를 뚫을 수 있는가는 아직 수수께끼다.

숙주나무를 뚫고 들어간 겨우살이 가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시 껍데기를 뚫고 나와 공기 중에 가지를 펴고 잎을 내 광합성을 한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지만 스스로도 광합성을 할 수 있으므로 ‘완전기생’이 아니라 ‘반(半)기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숙주나무에 여러 겨우살이가 자라는 듯 보여도 많은 경우 숙주나무 속에서 연결된 단일 개체다. 숙주나무를 통과하며 뻗어 나간 겨우살이 가지의 전체 길이가 수 m가 되기도 한다.

겨우살이에 드물게 다른 겨우살이가 기생하기도 한다. 새나 짐승의 똥이 겨우살이 가지에 떨어지면 그 속 종자에서 발아한 새로운 개체는 그곳을 숙주나무로 착각하고 마찬가지 방법으로 정착한다. 이렇게 되면 같은 겨우살이인 것처럼 가까이 있는 두 가지가 실상은 완전히 서로 다른 개체인 것이다.

이쪽 겨우살이와 저쪽 겨우살이가 동일한 개체인지, 아니면 한 겨우살이에 다른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것인지를 확실히 가리려면 범죄수사에 쓰이는 ‘DNA 지문법’을 사용하면 된다. 각 겨우살이의 DNA를 조사해 염기서열에 차이가 나타나면 서로 다른 개체라고 판정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비롭게 여기던 겨우살이가 첨단 생명과학 기법을 동원해 조사한 결과 어이없게도 동족과 이방인도 구분 못하는 어수룩한 식물이라는 게 밝혀진 셈이다.

유장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식물세포공학연구실 선임연구부장 jrliu@kribb.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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