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슴 못 느끼는건 유전자 탓?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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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오르가슴을 느끼는 체할 수 있지만 실제 뇌 반응은 진짜 오르가슴을 느낄 때와 상당히 다르다. 오르가슴을 소재로 2002년 칸 광고제에서 인쇄부문 금상을 수상한 작품 중의 한 부분.
여성들은 오르가슴을 느끼는 체할 수 있지만 실제 뇌 반응은 진짜 오르가슴을 느낄 때와 상당히 다르다. 오르가슴을 소재로 2002년 칸 광고제에서 인쇄부문 금상을 수상한 작품 중의 한 부분.

눈을 반쯤 감고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이상야릇한 신음소리를 낸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샐리 역할을 맡은 멕 라이언이 가짜 오르가슴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은 여성이 ‘오르가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오르가슴을 가장하는 여성은 파트너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뇌를 속일 수는 없다.

○ 오르가슴 동안 대부분 뇌 활동 멈춰

네덜란드 그로닝겐대 게르트 홀스테게 교수는 지난달 20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 인간생식 및 발생학회에서 “여성들은 교묘하게 오르가슴을 느끼는 체할 수 있지만 실제 뇌 반응은 진짜 오르가슴을 느낄 때와 상당히 다르다”고 발표했다.

진짜 오르가슴을 느낄 때의 뇌(위)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소뇌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이 활동을 멈춰 오르가슴을 느끼는 체할 때의 뇌(아래)와 확실히 다르다. 사진 제공 그로닝겐대

연구팀은 19∼49세의 여성 13명을 대상으로 남성 파트너로부터 성적 자극을 받아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 오르가슴을 느끼는 체할 때, 쉬고 있을 때의 여성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로 조사했다.

오르가슴 동안 여성의 뇌는 대부분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려움과 불안에 관여하는 뇌 부위나 의식적인 행동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도 활동을 중지했다. 하지만 가짜 오르가슴 상태에서는 이 영역들이 활성화됐다.

홀스테게 교수는 “이는 심하게 불안한 상태라면 성관계하는 동안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어렵고 오르가슴 동안에는 몸을 움직여도 무의식적 상태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오르가슴 못 느끼는 여성 34%는 유전적 요인

영국왕립회지 ‘바이올로지 레터스’ 6월호에는 오르가슴을 잘 느끼지 못하는 여성은 유전자 탓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영국 런던의 성토머스병원 쌍둥이연구소의 팀 스펙터 교수팀은 일란성 쌍둥이 자매 683쌍과 이란성 쌍둥이 자매 714쌍을 대상으로 오르가슴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유전자가 100%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자매와 유전자 일부에서 차이가 있는 이란성 쌍둥이 자매의 대답은 달랐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횟수가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일란성 쌍둥이에서 훨씬 많이 나타난 것.

스펙터 교수는 “이는 오르가슴이 유전자의 차이에서 올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성관계에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 가운데 적어도 34%는 유전적 영향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여성의 오르가슴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게 되면 오르가슴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 임신 확률 높이는 반응

오르가슴이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면 진화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진화학자들은 여성의 오르가슴이 임신 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임신 가능 기간에 오르가슴에 더 자주 도달하고 오르가슴 동안 정액을 더 많이 빨아들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있다.

상명대 생물학과 이성호 교수는 “오르가슴 동안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이 분비돼 자궁이 수축된다”고 밝혔다. 수축된 자궁은 내부 압력을 증가시켜 정액을 더 많이 빨아들이고 수정 확률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오르가슴이 남성 배우자를 선택하는 도구라는 이론도 있다. 남성이 잠자리에서 여성을 쉽게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한다면 아이들을 부양하는 것 같은 다른 생활도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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