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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1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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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리면 예외 없이 열이 동반된다. 열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경고등이다.
즉 몸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으며 면역세포가 감염에 저항해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내과 오원섭 교수의 도움말로 열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체온유지시스템=체온이 유지되는 것은 뇌 시상하부에 ‘체온조절중추’가 있기 때문이다. 체온조절중추는 가정에서 보일러 온도를 맞춰 놓는 온도조절장치와 비슷하다. 이때 기준온도는 37도에 맞춰져 있다.
만일 체온이 기준온도보다 낮으면 체온조절물질(PGE2)을 분비해 기준온도를 약간 높인다. 기준온도가 올라가면 이 온도에 맞추기 위해 인체는 피부로 가는 혈관을 수축시켜 체온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또 반사적으로 따뜻한 곳으로 가거나 옷을 껴입고 웅크리는 자세를 취하는 등 행동변화가 생긴다. 이는 2∼3도의 체온 상승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열을 올리려면 근육이 떠는 근육운동을 해야 한다. 이때 발생된 열로 데워진 혈액은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퍼진다. 40도 이상의 고열도 이러한 근육 떨림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근육 떨림 등으로 올릴 수 있는 체온의 최고 한계는 42∼44도 정도.
만약 체온이 기준온도에 비해 높으면 피부로 가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땀을 내게 해 체온을 떨어뜨린다.
개구리 뱀 등 변온동물은 체온조절중추가 없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바뀐다. 이들은 낮은 온도에서는 대사활동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동면을 한다.
▽사람마다 다른 체온=사람의 중심체온은 대개 37도다. 중심체온은 심장에 흐르는 피의 온도를 말한다. 그러나 이곳을 직접 잴 수 없으므로 직장이나 혀 밑, 겨드랑이 등에서 측정한다. 직장 온도는 평균 37도, 구강 온도는 36.5도, 겨드랑이는 36도 정도.
외국에선 중심체온에 가장 가까운 직장에서 온도를 재지만 국내에선 구강 온도를 많이 사용한다.
또 체온은 하루 중에도 여러 번 달라진다. 오전엔 0.5∼1도 낮고 오후에는 0.5∼1도 높다.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식사를 하면 대사활동이 증가돼 체온이 38도 이상 될 수 있다. 밤에 주로 일하는 사람은 체온이 밤에 높고 낮에 떨어진다.
이뿐 아니다. 체온은 성별 연령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여성은 배란과 월경 시기에 체온이 0.6도 상승한다. 노인은 피부온도가 젊은이보다 1∼1.5도 낮다.
▽열은 필요악=열은 몸속에 침입한 균이 체온을 올리는 물질인 ‘파이로젠’을 분비해 체온조절중추의 기준온도를 높였기 때문에 발생한다. 독감에 걸렸을 때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오한이 생기는 것도 근육을 움직여 이러한 기준온도를 맞추기 위한 생리적인 반응이다.
감기 등으로 생긴 열은 대부분 1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지며 인체에 해롭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된다. 열 자체가 바이러스나 세균의 성장을 막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인 율리우스 바그너야우레크 박사는 신경매독에 걸린 환자에게 말라리아균을 주사했을 때 발생되는 열로 매독균을 치료했다. 그는 이 치료법으로 1927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성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온도에 특히 약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또 열은 면역세포의 식(食)작용과 살균작용 등 면역기능을 높여준다. 20도에선 면역세포의 일종인 식세포가 시간당 0.1∼0.2mm 이동하는 반면 36도에선 0.5mm, 40도에선 1mm로 이동성이 크게 높아진다. 열은 혈관을 확장시켜 더 많은 면역세포들이 감염 부위에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열이 나면 걱정스럽지만 세균을 없애기 위한 전략적인 순기능도 있어 열이 났다고 무작정 해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열은 이렇게 내려라=만성 폐 또는 심혈관질환이 있는 노인, 열 경련이 있었던 어린이, 열 때문에 의식을 잃는 환자 등은 해열해야 한다. 체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산소소모량이 늘어나고 심박수가 15회 정도 증가해 몸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열을 내리기 위해선 파이로젠 때문에 올라간 기준온도를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해열제를 규칙적으로 먹는다. 만약 해열제를 제때 먹지 못하면 기준온도가 다시 올라가 환자는 덜덜 떨면서 고생한다. 아스피린 타이레놀 등 해열제는 성인의 경우 6시간마다 먹는다.
열을 가장 빨리 떨어뜨리는 방법은 미지근한 물을 몸에 적셔주는 것이다. 수분이 증발할 때 1cc당 약 580Cal가 기화열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얼음이나 찬물을 사용하면 오히려 피부혈관을 수축시켜 피의 순환을 막는다. 이는 되레 열의 발산을 억제하므로 피한다. 이마에 찬 수건을 놓는 것은 심리적인 치료는 될 수 있으나 열을 내리는 방법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또 알코올과 같은 휘발성 물질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때 생기는 기화열은 물의 반 정도이므로 물보다 효과가 덜하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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