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세상]빙하시대가 인류를 키웠다

  • 입력 2002년 7월 16일 18시 38분


인류의 뇌 용적은 불과 수백만년 만에 침팬지의 뇌(위)보다 4배나 커졌다. 사진제공 워싱턴의대
인류의 뇌 용적은 불과 수백만년 만에 침팬지의 뇌(위)보다 4배나 커졌다. 사진제공 워싱턴의대
지난주 프랑스 학자가 600만∼700만년 전 원인(猿人)의 두개골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고릴라의 두개골이라는 반론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지만, 사실이라면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잇는 최고(最古)의 화석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 화석의 주인공이 원인이라 해도 진정한 의미의 인간으로는 보기 어렵다. 두개골이 겨우 침팬지만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뇌 용적은 1450㏄이지만 침팬지는 400㏄에 불과하다.

이번에 ‘투마이’ 화석이 발견되기 전까지 오래된 원인으로 꼽혀온 30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뇌의 용적이 420∼500㏄로 침팬지보다 약간 클 뿐이다. 사람의 뇌는 짧은 기간에 어떻게 해서 그렇게 커졌을까? 과학이 풀지 못한 최대의 미스터리를 ‘빙하시대의 기후 격변’으로 설명하는 과학자가 요즘 부쩍 늘고 있다. 최근 ‘전천후 두뇌’란 책을 펴낸 워싱턴의대 뇌학자 윌리엄 캐빈 등이 그런 학자에 속한다.

이들은 흔히 ‘빙하시대’로도 불리는 홍적세(200만년 전∼1만년 전)의 격심한 기후 변화 속에서 인류의 여러 변종 가운데 ‘멀티 플레이어형’만이 살아남게 되면서 뇌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그 이전까지 지구의 기온은 비교적 안정돼 있었지만, 홍적세에 들어와 4번의 빙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널뛰듯 기후가 급변했다. 빙하시대 때 처음 불과 돌도끼를 사용한 호모에렉투스는 뇌 용적이 900㏄까지 커져 비로소 인간다운 면모를 갖게 되었다.

특히 최근 그린란드의 얼음에 구멍을 뚫어 고기후를 복원한 결과는 기후 격변설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빙기가 수천년에 걸쳐 서서히 왔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린란드의 얼음은 불과 수십년 만에 온도가 8도나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빙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적도의 따듯한 물을 북극으로 실어 날라 지구 전체의 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대서양의 해류가 순식간에 변화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빙기의 엄습은 한파와 극심한 가뭄 그리고 식량난을 몰고 왔고, 해수면은 순식간에 100m 이상 하강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여러 종의 원시 인류가 멸종했고, 오로지 15만년 전 쯤 아프리카에 출현한 호모사피엔스만이 마지막 빙기의 병목을 통과해 전세계로 퍼졌다.

요즘 호모사피엔스는 엄청난 에너지를 쓰면서 지구의 기온을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상승시키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정도가 클수록 더욱 가혹한 ‘빙하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과연 호모사피엔스가 다가올 ‘빙하시대’의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동호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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