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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5월 2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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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한국은 현재 고등학생들이 이과를 기피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체 학생의 절반이 이과에 갔으나, 올해는 고등학생의 28%만이 이과를 지원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서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가. 심각하다면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지 말해달라.
▽리 원장〓과학은 인류에게 기술문명을 가져다 주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나쁜 인상도 많이 주고 있다. 프레온 가스에 의한 오존층 파괴 등 환경오염과 같은 것들이다. 이공계 기피를 극복하려면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이런 오명을 씻어야 한다.
이공계 기피를 가져오는 또 다른 원인은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잘못된 교육제도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공부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암기 위주로 흐르고 있다. 호기심을 일으키는 공부는 위축되고 기억력에 의존한 공부에 지루하게 매달리고 있다.
대만에서는 공학보다 과학 분야에서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 교과과정을 재미있게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학교 밖 활동을 통해 과학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매년 대만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우 여사를 기념하는 2주간의 여름학교를 운영했다. 학생들이 물리를 즐겁게 체험할 수 있어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대학 입학시험을 바꿔 학생들이 다양한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지난해 대학 입학시험에서는 물리학의 인기가 전체 과목 중 3위로 올라섰다.
▽비나커 회장〓독일도 같은 추세다. 90년대 초 유럽 경제가 좋지 않았을 때 독일에서 과학자들을 대량으로 해직시킨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이공계 기피가 나타났다. 그 뒤 과학자를 해직한 것이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지금은 경제가 좋아져 그때 해직된 과학자들을 다시 고용하고 있지만 당시 충격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는 그때의 일이 큰 잘못이었다는 여론이 폭넓게 조성됐다. 독일은 예전에는 물리나 화학을 하지 않고도 졸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리나 화학 등 적어도 2가지 과목을 택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도록 과학교육을 강화했다. 또한 정부는 해마다 특정 분야의 과학을 선정해 과학자들이 학생과 대중을 상대로 홍보와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지구과학의 해, 지난해는 생명과학의 해였는데, 이것이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토 이사장〓일본도 비슷한 처지이다. 과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의 숫자가 적어져, 대학이 제대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교수들이 학생들의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일본학술진흥회는 이공계 기피를 극복하기 위해 ‘슈퍼 사이언스 고등학교 프로그램’을 올해 시작했다. 정규과정 외의 과학을 자유롭게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20개 모집에 약 100여 개의 학교가 지원해 경쟁이 치열했다. ‘수준높고 재미있는 과학’을 원하는 욕구가 그만큼 많다. 두 번째 방법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의 협력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으며, 대학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을 많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이것도 성공적이었다.
▽사라 회장〓호주는 과학을 지원하는 학생이 아직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반면 공학 계열은 잘 버티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았더니 7∼8세의 초등학교 교육에서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먼저 대학과 연계해 과학에 눈을 뜨는 초등학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졸업한 뒤 갈 수 있는 직장이 얼마나 많은가도 과학을 장래 직업으로 선택하는데 중요하다. 호주에서는 이공계 대학생들이 꼭 과학기술자만이 아니라 경영자가 될 수도 있고, 창업의 기회도 많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사토 이사장〓어린 학생들의 관심은 부모와 사회의 관심에 많이 좌우된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가 과학과 공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예를 들어 그 사회에서 노벨상을 탄 사람이 나오면 과학과 공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김 이사장〓한국의 이공계 기피 원인을 진단해보면 우선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변호사나 의사에 비해 낮은 월급을 받고 있고, 직업의 안정성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또 젊은이들은 공학과 과학을 어렵게 느끼고 평생 공부만 해야 한다고 느낀다. 혹시 이런 문제에 대해 대책은 없는지 이야기 해달라.
▽비나커 회장〓직업의 안정성은 장래 선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많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5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자신 없어 한다. 미국과학재단 조사에 따르면 비록 나중에 크게 성공한 과학자들조차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 초년생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미국과학재단은 신진 과학자들을 연구 업적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첫해에는 첨단 연구소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했다. 여기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나중에 과학자로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독일연구협회도 신진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김 이사장〓일본에서 한국처럼 화학과 물리를 선택하는 고등학생들이 10년 전부터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다.
▽사토 이사장〓대학 입학시험 때문이다.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줄어들자 사립대는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어려운 물리 화학 과목을 대학입시에서 제외시켰다. 그 결과 물리나 화학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욱 없어졌다. 문제는 대학에 있다. 나는 대학의 관계자들에게 다른 대학과 비교해서 입시제도를 만들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리 원장〓우리가 잘못 하고 있는 것 가운데 또 한가지는 너무나 많은 것을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지식이 축적되면 될수록 교사들은 고등학생들에게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질려 한다.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가르쳐야 한다.
▽비나커 회장〓또 지루하게 가르치기도 한다(모두 웃음).
▽김 이사장〓대부분의 나라에서 바이오(BT), 정보통신(IT), 나노기술(NT) 등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응용과학을 강조한다. 반면 기초과학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서는 기초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히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이라 연구개발비를 지원할 때 국민들에게 그 결과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정부는 기초과학보다는 공학이나 응용학문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여러분들의 나라는 어떤가.
▽리 원장〓21세기에 들어서면서 지난 세기동안 우리가 했던 것들을 돌아보자. 미국의 경우 벨연구소, IBM 같은 회사들이 많은 기초 지식을 축적했기 때문에 수많은 발명품들을 개발해 낼 수 있었다. 트랜지스터가 처음 나왔을 때 아무도 이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흥미를 갖고 연구했던 결과가 나중에 엄청난 반도체 혁명을 일으켰다.
실용적인 연구를 더 많이 한다고 꼭 실용적인 것이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기초 과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어제에 내 옛 제자인 연세대 부두완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데 교수가 된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어머니조차 설득시키지 못했다고 한다(모두 웃음).
▽사라 회장〓호주의 경우 국가의 보조금 지원이 떨어지면 학생들은 분야의 인기도에 따라서만 전공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정부가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얼마나 꾸준하게 하느냐에 따라서 기초과학의 발전이 좌우될 것이다.
▽사토 이사장〓기초과학 분야는 어떻게 연구비를 지원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따라서 재미있고 새로운 연구들을 하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연구에 대한 다면적 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널리 알려진 것만을 연구하는 게으른 원로 교수들만 연구비를 탈 것이다.
▽비나커 회장〓과학기술자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 연구를 해야할의무도 있다. 무턱대고 기초 과학만 강조하는 것도 좋지 않다. 1970년대부터 미국은 암 연구에 엄청난 돈을 부어넣었지만 30년이 지났는데도 암 치료에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리 원장〓수 십년 전 과학자들의 노트를 뒤져보면 모두 기계나 장치의 효율을 얼마나 높일 것인가에 몰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컴퓨터나 반도체가 나와 기계와 장치를 완전히 뒤바꿔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로서 상상할 수 없었던 반도체나 컴퓨터를 만들어 낸 것이 기초과학이다. 기초과학과 엉뚱한 생각은 존중되어야 한다.
▼참석자▼
위안톄 리 <대만 학술원장>
에른스트-루드비히 비나커 <독일연구협회장>
비키 사라 <호주연구협의회장>
사토 테이이치 <일본학술진흥회 이사장>
사회=김정덕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정리=신동호·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