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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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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의 한 컴퓨터회사 직원으로 일하는 최남열씨(33)는 동네 오락실에서 돈을 받아 나온 적이 있다. 동전 하나 넣고 지하 요새를 폭격하는 게임인 ‘스크램블’을 세 시간 동안 한 번도 지지 않고 하다가 주인이 “돈을 줄 테니 오락실에서 제발 나가달라”고 부탁했던 것.
요즘도 그는 매일 포트리스와 포커를 인터넷에서 즐기는 게임 마니아. 온라인 게임업체인 이게임넷의 운영진은 그를 ‘중상급자’로 평가한다.
그가 인터넷 게임을 하다 새로 뛰어든 분야는 인터넷경매. 지금까지 인터넷 경매를 통해 사들이거나 내다판 물품은 1000만원 어치가 넘는다.
그는 인터넷 게임과 경매가 닮은 점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승부가 짧은 순간에 난다는 점, 경쟁 상대를 알아야 한다는 점, 배짱과 뚝심이 필요하다는 점, 끝나면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는 점 등이다.
▼살 물건 미리 점찍어▼
인터넷 경매에서 최씨가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타이밍’은 최종 마감시간 5분 전. 이때까지 최씨는 살 물건을 미리 점찍어 놓고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마감 5분 전. 그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먹잇감을 향해 서서히 다가서는 맹수처럼….
그는 먼저 경쟁 상대를 살핀다. 가격이 얼마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경쟁하느냐가 이 시간에는 승부를 가르는 요소. 물품이 마음에 들면 과감한 베팅도 하지만 초보자가 끼어 가격이 턱없이 올라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손을 털고 입찰을 포기한다.
최씨는 게임에서 익힌 뚝심으로 판매자와 경매 물품에 대한 정보를 세밀하게 탐색한다. 판매자는 물품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숨기게 마련. 가격이 낮지만 품질이 나쁜 물품을 낙찰받으면 최씨는 경매에서 패배했다고 말한다. 물품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파악되면 가격을 놓고 배짱을 부려도 좋은 물건을 낚아챌 수 있다는 것.
최씨는 “게임이나 경매나 상대와의 경쟁이기 때문에 스릴과 쾌감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경매업체인 옥션에서 음반과 가전품을 거래하는 김재홍씨(26)도 게임의 룰을 응용하는 케이스.
▼게임같은 스릴-쾌감▼
요즘 온라인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김씨는 음반 300만원 어치를 싸게 사들인 뒤 오프라인에서 되팔아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경매사이트 옥션에서는 그를 프로급 경매 딜러로 평가한다. 경매 마감시간에 마음에 드는 물품이 있으면 가격을 다른 사람보다 앞서 미리 높여놓거나 자신의 물건을 내놓을 때는 제품의 단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구매자의 신뢰를 얻는 등 초보자 치고는 너무 능숙하다는 것.
김씨는 “최종 낙찰 과정에서 경쟁 상대가 없을 때 허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게임넷의 이유재 사장은 “온라인 경매시장이 커지면 미국에서처럼 프로게이머가 타고난 승부 근성과 컴퓨터 솜씨로 온라인 거래에서 가격을 조절하는 ‘경매딜러’로 변신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