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CEO들 "모임 부담스럽네…"

  • 입력 2000년 11월 12일 20시 53분


“그렇게 많고 활발했던 모임은 어디 가고 쓸쓸한 바람만….”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서울 벤처밸리는 벤처 CEO들의 모임으로 넘쳐났다. 호텔의 연회장은 예약이 끊이지 않았고 부근 호프집은 각종 동기모임으로 북적였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이들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모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CEO 모임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횡적 연대는 사실상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벤처리더스클럽 아이비리그 e―CEO클럽 등 몇 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열기는 연초와 비교하기 힘들 만큼 식어있다.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은 “연초에 벤처 1세대들의 리딩과 2세대의 추진력이 결합돼 모임이 쉴새없이 이어졌다”며 “요즘 아주 친한 CEO 몇몇을 빼놓고 거의 만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CEO 모임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우선 벤처기업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올초 활발했던 서울 벤처밸리의 CEO 모임은 주로 같은 출신 회사와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기초적인 연고를 바탕으로 이뤄진 모임은 벤처기업간 우열이 가려지면서 틈이 생겼다는 것.

예를 들어 같은 모임에서 시가총액 1조원에 육박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자 ‘공감대’내지 ‘연대감’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또 최근의 벤처위기론과 기업환경 악화도 식어가던 모임에 찬물을 부었다는 중론. IT거품론이 제기되고 자금사정이 나빠지자 CEO들은 인수합병과 내부 구조조정 등 자기 기업을 살릴 방법을 찾느라 다른 모임에 참석할 여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게임넷의 이유재 사장은 “몇 달 전에는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모임에서 오고간 얘기들도 들었다”며 “지금은 내 코가 석자인데 어디 그럴 틈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와 함께 최근 터진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은 이런 CEO 모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는 것. CEO들은 “한국디지탈라인이 사건에 연루되면서 무슨 모임이 있어도 사람을 가려 만나기 때문에 될 모임도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안철수연구소의 박태웅 고문은 “최근에는 20대 사장들과 여성벤처인들 모임이 결성되는 등 진전의 조짐도 있다”고 “어려울 때일수록 리더인 1세대들의 분발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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