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팩코리아 이홍구이사 "외국기업 다녀도 애국할 길 많아요'

  • 입력 2000년 8월 15일 20시 10분


다국적 기업 컴팩의 한국지사에서 국제구매본부를 이끌고 있는 이홍구(李弘九·43)이사.

국내기업에서 4년간 근무한 뒤 외국기업인 한국IBM에서 12년, 컴팩코리아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그는 사실 국산 제품의 수출에 ‘알짜 기여’를 하고 있다.

그가 담당하는 국제구매 업무는 각 지사별로 현지의 부품 또는 완제품 생산업체 가운데 경쟁력있는 회사를 발굴, 전세계 공장으로 수출(납품)하는 일을 하는 곳. 전세계에 흩어진 지사는 서로 자신들이 발굴한 제품이 납품되도록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는 실적을 올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이사는 이 경쟁에서 단연 돋보였다. 92년 한국IBM에서 국제구매 과장직을 맡고 있을 때의 일화. 그는 미국 본사가 대만의 모기업과 연산 50만대 규모의 모니터 공급계약을 체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미국 애틀란타로 날아갔다.

구매결정권을 쥔 부사장과 대면한 그는 ‘싼 가격’이 대만산 선택 이유라는 얘기를 듣고 기지를 발휘했다. 당시 국산 모니터는 대만산보다 4∼5% 가량 비쌌다.

“가격이 전부라면 대만산보다는 값이 싼 중국산 또는 말레이시아산을 구매하는 게 현명합니다. 한국 제품은 가격은 대만을 쫓아가고 품질은 일본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날아온 과장의 ‘당돌한’ 논리를 들은 부사장은 재검토 지시를 내렸고 2주 뒤 국내의 삼성전자가 대만기업을 제치고 IBM과 모니터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이사는 국산품이 국제적 수준에 도달하도록 기술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수원 구미 오산 청주 등을 누비면서 엄격한 품질관리를 입이 닳도록 강조한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본사 구매계획 및 시장동향을 국내 기업에 알려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97년 국제구매전문가인 그가 합류한 뒤 컴팩코리아의 국제구매액은 급격히 늘고 있다. 97년 12억달러에서 △98년 18억달러 △99년 23억달러 △올해 40억달러(추정) 등으로 일취월장하고 있다. 3년내 100억달러를 돌파하겠다는 목표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 진출한 정보기술 기업들의 연간 국제구매액이 10억달러선인 점을 고려하면 그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외국기업에 근무하는 그의 철학은 뚜렸했다.

“외국기업에서도 애국할 수 있는 길이 많습니다. 국내 기업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국산품이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돕고 싶습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