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의 날]윤창륙/법의치과학이란?

  • 입력 2000년 6월 7일 00시 41분


1897년 5월4일 프랑스 파리의 한 바자에서 영화를 상영하던 중 필름에 불이 붙어 10분 만에 극장이 불바다가 돼 126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30여명은 심하게 타버려 도무지 신원을 알 수 없었다.

당시 신원식별 방법이 총동원됐지만 최종 해결책은 ‘치아’에 있었다.

바자 참석자 중 한 사람이었던 파라과이공사의 제안에 따라 유족을 통해 치과의사를 동원, 불탄 시체의 치아와 생존시 진료기록부를 대조해 사망자 대부분의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쿠바 태생의 치과의사인 오스카 아메도는 이 사건을 정리해 보고서로 만들었고 이로써 근대 법의치과학이 탄생하게 됐다.

법의치과학은 치아의 독특한 성질 때문에 가능한 분야다. 치아는 인체조직 중 가장 단단하며 물리적 화학적 저항성이 높아 오랜 시간 보존된다. 이 때문에 고대 인골의 감정 뿐만 아니라 혈액형 연령 성별 유전자형의 감정과 사후경과시간 추정 등에도 이용되는 것이다.

국내에선 1968년 12월말 발생한 한강나루터 여자살해사건 해결이 최초의 법의치과학적 감정사례다. 피살자의 시신에 남겨진 치흔을 용의자인 피살자 남편의 치열과 대조해서 남편을 범인으로 붙잡은 것이다.

치과의사 특히 법의학을 전공하는 치과의사들은 비행기 추락사고나 잔혹범죄 등에서 시신의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때 언제나 선두에 나서야 한다.

1989년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추락사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 지존파사건, 막가파사건, 최근의 씨랜드화재사건에도 치과의사들이 나섰다.

법의치과학은 숨진 사람에 대해 별의 별 것을 다 밝혀낼 수 있다. 숨진 사람의 직업, 경제적 여유도 알 수 있고 그가 육식주의자인지 채식주의자인지도 구별해낸다.

법의치과학자들에게 치아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법의학적 인류학적 정보를 제공해주는 최고의 자료이다. 법의치과학은 또 ‘말이 없이 죽은 자’의 억울한 신원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인권존중의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윤창륙(조선대 치대 구강내과 교수·법의치과학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