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햇볕에 엽록소 파괴되면서 물들어

입력 1998-09-15 19:42수정 2009-09-25 01:46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온 산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는 단풍향연이 시작됐다. 때늦은 무더위에 잠시 주춤하고는 있지만 설악산과 오대산 산머리에서 시작된 ‘옷 갈아입기’는 소리없이 산허리로 내닫고 있다.

흔히 첫 서리를 맞은 단풍이 가장 붉고 화려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 알려진 상식. 서리를 맞으면 나뭇잎은 색소가 발달하기도 전에 시들거나 얼어죽고 만다.

단풍현상은 나뭇잎의 생육활동이 막바지에 이르러 수분과 영양분의 공급이 둔화되면서 나타난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잎의 밑부분에 코르크처럼 단단한 세포층인 ‘떨켜’가 만들어지고 이 떨켜가 영양분의 이동을 차단해 엽록소의 생성을 어렵게 한다. 반면 기존에 남아있던 엽록소는 햇볕에 파괴되면서 줄어들기 때문에 잎의 색깔이 변하게 된다.

단풍이 진행되는 과정은 색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노란색 단풍은 엽록소의 푸른색에 가려져 있던 ‘카로틴’과 ‘크산토필’등 노란색소가 엽록소의 소멸과 함께 겉으로 나오는 경우. 눈부신 광선에도 안전하게 살아남아 엽록소가 파괴된 뒤에도 잎 속에 계속 남아있다. 아카시나무 목백합 생강나무 플라타너스 자작나무 호도나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갈색단풍에 속하는 너도밤나무와 느티나무 등은 ‘타닌’이란 갈색색소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

잎속에 있던 색소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붉은 단풍의 경우에는 ‘안토시아닌’이란 붉은 색소가 새로 생성된다.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이 색소는 탄수화물이 많을 수록 생성이 촉진된다. 따라서 낮이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 햇볕이 잘들고 밤엔 시원하면서 일교차가 클수록 잘 만들어진다. 참나무 신나무 옻나무 담쟁이덩굴 당단풍 등이 이에 속한다.

단풍현상은 나무가 겨울철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몸만들기’다. 길어야 15∼20일에 불과한 짧은 기간동안 나무들은 겨울나기를 위해 ‘낙엽만들기’를 준비한다. 나뭇잎에 남아있는 여러가지 영양물질을 뿌리나 나무밑둥으로 내려보내거나 조직의 일부분으로 통합하는 것. 모든 영양분이 사라진 나뭇잎은 낙엽으로 변해 죽어서 떨어진다.

단풍현상은 나무들에게 ‘늙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뭇잎이 물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잎은 나이순서에 따라 가지의 맨밑에 달린 잎부터 시작해 중간에 있는 잎, 끝에 달린 잎 순으로 단풍현상이 일어난다. 나무는 이런 노화과정의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계속 성장한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