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일기]대학병원 病

  • 입력 1997년 2월 9일 20시 13분


직장암으로 사망한 친구의 문상을 다녀온 김사장(45)은 어느날 변에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고 친구처럼 암이 아닐까 불안해졌다. 며칠간 망설이며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았다. 내시경 검사를 해보니 치질에서 피가 나는 것이었다. 직장암이나 대장암과는 관계가 없었다. 치질기가 약간 있긴 했으나 수술할 정도는 아니었다. 약물치료를 하자고 권했다. 그러나 문제는 같이 온 부인에게 있었다. 『작은 병원에서 어떻게 암을 제대로 진찰할 수 있느냐』며 대학병원에 가서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핵자기공명장치(MRI) 검사를 해 보아야 암의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직장암검사는 내시경검사가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 CT나 MRI검사는 직장암이 발견된 다음 다른 부위에 암이 얼마나 펴져있나를 알아 보는 검사라고 설명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또 하루는 새침하게 생긴 중년부인이 친구와 함께 진찰실 문을 두드렸다. 자신은 대학병원 과장한테서만 진료를 받아왔는데 필자가 치질 수술을 잘 한다고 친구가 강권해서 이끌려 왔다며 시무룩하게 진찰에 응했다. 검사를 해보니 그 부인의 증상은 외치핵과 내치핵이 같이 있는 혼합치핵이었다. 그 부인은 수술을 받고 나서도 「수술이 잘 되었을까요」 「더 이상 문제는 없을까요」하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후 병원에 들린 이 부인은 치질은 나았는데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며 불평을 털어놓았다. 항문이 미끈하지 않고 변을 볼 때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 부인은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이 잘 되었는지 검사해 보겠다며 쌀쌀하게 나갔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바로 그 부인이 꽃다발을 안고 부끄러운듯 웃으며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으니 대학병원에서 치질 수술이 잘 되었고 항문기능도 완벽하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또 외국에서도 대학병원에서는 거의 치질 수술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병원 병」은 이 부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의료계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02―413―6283 이동근(항문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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