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해진 학교, 만만해진 교사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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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최근 재임 중이던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 앞에서 21일 오전 한 추모객이 학교 안을 지켜 보며 눈물을 닦고 있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넌 학교 선생님들 문제는 취재 안 해? 요새 병원 찾아오는 교사들이 엄청 많은데.”

정신과 의사인 지인과 식사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게 몇 주 전이었다. 그는 “교사들을 상담해 보니 최근 학교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각자 상황은 달랐지만,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만큼은 너나없이 동일하게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교감 선생님이라는 분까지 찾아왔는데, 문제를 일으킨 아이의 학부모가 교사에게 계속 민원을 넣고 학부모회까지 참석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통에 결국 교사들이 몇 그만뒀고 본인도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아 병원을 찾았대.” 지인이 말했다.

그렇게 식사 시간 환담 소재로 듣고 지나쳤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 것은 며칠 전 두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 나서다.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남학생이 담임인 여성 교사의 얼굴 등을 여러 차례 가격하고 바닥에 넘어뜨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또 다른 서울 초등학교 교내에서 20대 담임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동료 교사들은 고인이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증언했다. 

● 교권 침해 경험 58% “부모·학생으로부터”
실제 고인이 학생과 학부모 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아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밝힐 일이다. 하지만 진위와 관계없이 연달아 발생한 두 사건으로 그동안 쌓였던 교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고인의 빈소와 근무지 학교에는 교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20일 학교를 방문했던 교육부 차관은 교사들과 유족 항의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가 시민들의 항의를 받으며 되돌아가고 있다. 이 학교에서 20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시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라는 스승의 날 노래 가사나 선생‘님’, 스승‘님’ 같은 호칭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교사는 영예로운 직업이고, 공경의 대상이었다. 기자의 부모님도 모두 학교에서 근무하셨다.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엄마의 학교에 가면 한참 큰 언니, 오빠들이 엄마를 향해 90도에 가까운 깍듯한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그냥 하는 인사가 아니라 경외하는 존재를 향한 정중한 인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승의 날이면 제자들이 쓴 정성 어린 손 편지들이 한 아름 답지했다.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스승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학창 시절 기자의 장래 희망은 늘 교사 아니면 교수였다. 

하지만 요새 교사들의 처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교총에 접수되는 교권 침해 관련 상담 건수가 매년 400~500건에 이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학부모에 의한 침해다. 지난해 접수된 상담 520건 중 46.3%가 학부모 교권 침해 사례였다. 학생으로 인한 침해도 12.3%로 3위를 차지했다. 

올 1월에는 설문 조사로 학부모 교권 침해 사례를 살펴봤는데 다음과 같았다. ‘다른 교사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학생을 지도했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 ‘음료수 먹으면 살찐다고 말한 것이 아동학대라며 사과 요구’, ‘팔 다친 학생에게 상태가 앉아있으라고 했더니 정서적 아동학대라고 항의’, ‘학생에게 눈을 흘겼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 등이다. 

직능단체가 과한 사례만 수집한 건 아닐까 했는데, 기자의 지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함께 대학원 수업을 듣는 사람이 교사인데, 받아쓰기 시험을 쳤다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아이에게 무안을 줬으니 아동학대’라는 취지의 지적을 받았다더라,” “본인 카카오톡 프로필에 남자친구 사진을 올렸다고 학교 측에 ‘담임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5일 용산 대통령실 자유홀에서 열린 제42회 스승의 날 기념 현장교원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공교육 불신·‘개근 거지’…만만해진 학교
어쩌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선생님이 이처럼 ‘만만한’ 존재가 돼버렸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만만해진 것이 비단 선생님만은 아니다. 학교 교육도 만만해진 지 오래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집중하지 않고 엎드려 자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학교가 끝난 뒤 학원에 가서야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느덧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 돼버렸다. 학교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런 공교육 괄시, 불신은 사교육 시장을 계속 키우고 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생이 쓴 학원·과외·인터넷강의 수강료 등 사교육비 총액이 26조 원에 이르렀다. 전년 대비 2조5000억 원(10.8%) 더 늘었다. 사교육 참여율도 78.3%, 528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자의 주변만 봐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는 부모를 찾기 어렵다. 영유아도 예외가 아니다. 지인 중에는 7살 자녀를 총 10개 학원에 보내는 이도 있다. 오죽하면 공교육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조차 공교육 과정에는 없고 학원에서만 배울 수 있는 ‘킬러 문항’이라는 것이 출제돼왔을까. 
서울의 한 학원가에 있는 학원 광고판.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에 대비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동아일보D

교육뿐이랴. 학교 출석의 의미도 가벼워졌다. 기자는 ‘죽을 듯이 아파서 못 갈 정도가 아니라면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던 시대를 살았다. 한데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친구들은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결석한다고 한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 예방 차원에서 나라가 나서 이런 결석을 권장하긴 했지만, 아마 옛날이었다면 몸이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학교에 나왔을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학교에 개근하는 아이들을 가리켜 ‘개근 거지’라는 말까지 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외국어 연수, 외부 활동, 여행 등으로 체험학습 결석 한 번 하지 않는 아이는 ‘개근하는 거지’라는 말이다. 어느새 학교 출석은 외국어 연수나 외부 활동, 여행보다 가벼운 의미가 됐다. 

● 공교육 붕괴, 교권에 영향
교권이 추락하게 된 원인에 학생 인권 중시, 저출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렇듯 공교육과 학교 전반에 대한 인식 변화 역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를 상기해본다. 지인이 사는 동네의 한 보습학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이들 실력을 잘 끌어 올려주기로 유명해서 학부모들이 줄을 서서 아이를 넣으려는 곳이라 한다. 지인도 대기 끝에 겨우 아이를 입소시켰는데, 막상 수강해보니 그곳 강사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과제를 내주고 이를 제대로 해 오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위협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아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럼 강사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학원을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기자가 묻자 지인은 “아이 공부만큼은 확실히 시켜주는 강사인데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든 생각은 ‘만약 그 강사의 행동이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일어났으면 부모들의 반응이 어땠을까’하는 것이었다. ‘아이 공부만큼은 확실히 시켜주는 교사이기에 그런 행동은 용인할 수 있다’고 똑같이 생각했을까. 

학교와 교사는 만만해지고, 사교육 같은 공적 영역 외 영역을 더 신뢰하는 사회. 이런 본말(本末)’이 전도된 사회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공교육이 빠르게 붕괴할 것이고, 양질의 인재들은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들어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것이다. 지위는 대물림되고, 사회는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 교권 추락을 단순히 교육 현장에서의 지도 편달 체계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심각하게 인지하고 해결책을 논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 모습. 동아일보DB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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