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정당한 파업은 그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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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헌법 33조 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근로자들의 파업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한 대기업 노조가 파업 출정식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DB
근로자들의 파업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한 대기업 노조가 파업 출정식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DB
제조업체인 A사의 노동조합은 회사가 평소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 항의해 조합원들에게 시간외근로 및 휴일 근로의 거부를 지시했다. 이로 인해 회사 업무에 지장이 초래되자 회사의 대표이사는 노동조합 위원장인 B 씨를 형법 제314조의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

검찰은 조합원들의 집단적 노무 제공 거부 행위가 노동조합법상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치지 않은 위법한 쟁의행위임을 전제로 B 씨를 업무방해죄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B 씨는 쟁의행위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이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쟁의행위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고 단체행동권의 내재적 한계를 넘는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만 처벌의 대상이 되므로 업무방해죄를 정한 위 형법 조항은 단체행동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근로3권 혹은 노동3권이라고 부른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가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으면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불평등한 노사 관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율적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근로3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근로조건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자유롭게 자주적인 단체를 결성하고(단결권), 그 단체의 이름으로 사용자와 근로조건에 관하여 자유롭게 교섭하며(단체교섭권), 근로자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단체행동을 할 권리를 가진다(단체행동권).

단결권은 근로조건의 유지·향상을 위해 근로자 개개인이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이 단체(노동조합)를 조직하거나 여기에 가입함으로써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한다. 단체교섭권은 근로자가 단결권에 근거해 결성한 단체가 근로자 개개인을 대신해 사용자와 자주적으로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단체행동권은 단체교섭이 결렬될 때 근로자들이 스스로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파업, 태업 등 사용자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단체행동권에 근거한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할 수 있다. 이때 ‘위력으로써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와의 관계가 특히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단체행동권에 있어서 쟁의행위는 핵심적인 것인데, 쟁의행위는 고용주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고 했다. ‘헌법상 단체행동권의 행사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정당한 파업 행위는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에 해당하는 불법한 행위로 볼 수 없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체행동권 행사로서 파업·태업 등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고 나아가 이로 인해 사용자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다고 하더라도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적이나 방법, 절차상 한계를 넘어 업무방해의 결과를 야기하는 쟁의행위는 정당한 단체행동권의 행사가 아니므로 이와 같은 쟁의행위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된다. 따라서 쟁의행위가 근로조건의 향상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거나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데서 나아가 생산 시설의 파괴나 폭력 행위에 이른다면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로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을 통해 쟁의행위는 헌법상의 기본권 행사이므로 그에 따른 모든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만 그것이 쟁의행위로서의 한계를 넘는다면 형사상 또는 민사상의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모든 쟁의행위는 일단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만 법이 허용하는 정당한 쟁의행위라면 예외적으로 위법성이 없어 처벌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시정하였다는 점에서도 이 결정은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해석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내용을 법률 해석을 통해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정영훈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파업권#근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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