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이제 다시 시작이다, 청춘의 꿈이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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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7일 일요일 비. 다시 시작.
#120 Ed Sheeran ‘Don't’ (2014년)

노래로 얼굴을 압도한 영국 가수 에드 시런.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노래로 얼굴을 압도한 영국 가수 에드 시런.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울릉도의 밤은 눅눅했다. 곧 광복절이었다. 비가 내렸다. 가수 S와 탈북청년 10명 남짓이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몇 시간 전, 함께 뱃길로 무사히 독도에 다녀온 걸 자축하는 자리였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훈련소로 가는 날/부모님께 큰절하고…’ 술이 얼근히 오른 30대 초반의 새터민 I가 목청을 뽑았다. “북한에서도 ‘이등병의 편지’, 다들 알아요. 입영열차 기다리는 역전에서 누군가 먼저 기타 퉁기며 시작하면 다들 눈물 흘리며 따라 부르거든요.” 노래는 몇 초 만에 날 십몇 년 전 까까머리로 돌려놨다. 1만 명의 주민과 100명의 관광객이 잠든 이 섬에서 다른 섬으로 난 멀리 날아갔다.

스물세 살짜리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의 2집 ‘X’가 UK 앨범 차트 7주째 계속 1위다. 발매 첫 주엔 미국(빌보드)과 영국(UK) 차트 양쪽 모두에서 정상에 올랐는데, 영국 남성 솔로 가수가 대서양 양편을 동시에 석권한 건 20년 전 에릭 클랩턴 이후 처음이다. 시런은 3년 전 아델의 ‘21’이 세운 UK 앨범차트 11주 연속 1위 기록을 뒤쫓고 있다.

일전에 팝 음악계 추남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시런도 좀 그쪽이다. 된장처럼 구수한 외모와는 달리 그는 ‘영국의 제이슨 므라즈’란 별칭에 어울리는 날렵한 목소리와 유연한 기타 연주, 뛰어난 작곡 감각을 지녔다. ‘원’ ‘싱’ ‘돈트’ ‘니나’ ‘포토그래프’ 같은 곡의 아찔한 멜로디와 호소력 있는 보컬, 통통 튀는 리듬에 랩처럼 빠르게 각운을 내뱉는 창법까지 갖춘 시런은 외국어 노래에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넘기기 아까운 유행이다. 시런의 1집 ‘+’(2011년)가 잠재력 넘치는 신인이 팝 음악계에 추가됐음을 선언했다면, 2집 ‘X’는 말 그대로 곱절의 발전을 보여준다. 두 달간 줄곧 들은 것 같다.

시런의 ‘돈트’ 뮤직비디오는 파쿠르(도시 공간을 예술적인 동작으로 질주하는 스포츠)와 비보잉, 현대 무용을 섞은 남성 댄서의 춤이 돋보인다. 요즘 인기 끈 호주 싱어송라이터 시아의 ‘샹들리에’ 뮤직비디오와 비교해 봐도 좋다. 댄서와 노래가 대단한 시너지를 내는 작품들이다.

어젯밤 서울로 돌아와 시런을 또 들었다. 20대 까까머리 시절은 시런 나이쯤 해서 끝이 났다. ‘X’의 피날레는 시런이 부른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와 ‘안녕, 헤이즐’의 주제곡.

‘이제 다시 시작이다/젊은 날의 꿈이여…’ 청춘은 안 끝났다. 원정은 계속된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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