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퀴즈 대잔치 수상자

  • 입력 2009년 9월 29일 02시 58분


코멘트
△최우수상 심성훈(25·서울 종로구)

△우수상 정태희(16·부산 부산진구)

▽ 심사평

퀴즈 이벤트의 수상자로 선정된 두 응모자는 모두 범인을 정확히 맞혔습니다. 심성훈 씨는 전체 줄거리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뛰어난 독자였습니다. 저자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만큼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이 돋보였던 답변이었습니다.

정태희 군은 과학영재학교 재학생답게 본인의 뇌과학과 로봇과학 지식을 한껏 드러낸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소설을 굉장히 즐기면서 읽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소설이 과학을 좋아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특히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와 줄거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탁환 정재승>

▽ 최우수상 심성훈(25·서울 종로구)

범인은 노민선이다.

노민선이 연쇄 살인을 저지른 동기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 그리고 과학자로서의 욕심이었다. '꽃뇌' 박말동, '도그맘' 시정희, '알람' 변주민 이렇게 세 사람은 16년 전 가상 공간에서 박열매를 죽였다. 박열매에게는 외동딸과 남편이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 외동딸이 바로 노민선인 것이다. 박열매의 남편은 노민선이 '섀도우 파더'라고 불렀던 노윤상이었다. 노윤상은 오민선의 어머니에게 가끔 들렀다고 노민선이 은석범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 박열매가 살해되던 날은 노윤상이 박열매와 노민선이 사는 집에 있던 날이었고, 따라서 병원에까지 박열매를 데려 갈 수 있었다.

노민선은 어떻게 박말동, 시정희, 변주민의 정보를 얻었을까? 아마도 노윤상의 앵거 클리닉에 있는 정보를 열람했을 것이다. 노민선은 노윤상 소유의 달섬 별장과 보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노윤상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앵거 클리닉에 다니는 환자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앵거 클리닉 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지리까지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박보배를 앵거 클리닉 근처에서 납치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단순히 복수만을 위해 살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변주민의 살해는 글라슈트의 이상 행동과 관련지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글라슈트는 무사시를 꺾을 때 목을 '틱틱' 꺾는 증상을 보였다. '틱틱'이라, 낯익은 표현이 아닌가? 그렇다. 바로 변주민의 버릇이었다. 글라슈트의 격투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심하던 노민선은 격투기 선수였던 변주민의 뇌를 적출하여 글라슈트에게 이식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뇌를 로봇에게 직접 이식하지는 않았겠지만 뇌에 저장된 격투 기술은 글라슈트에게 옮겼을 것이다.

노민선은 글라슈트가 우승하려면 글라슈트에게 분노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노윤상은 앵거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고, 따라서 분노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을 것이다. 노미선은 노윤상의 뇌에서 분노와 관련된 부분을 적출해내고 그것을 글라슈트에게 이식했을 것이다. 글라슈트가 파괴적인 이상 행동을 보였던 것은 분노를 배웠기 때문이다. 축하연에서 글라슈트가 이상행동을 나타내 은석범과 최볼테르가 위험에 처하자 노민선이 그들을 구하려다 최볼테르를 죽이고 말았는데, 이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노민선은 은석범이 퍼그의 뇌로 스티머스를 작동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스티머스의 정체를 밝히는 날에 자신이 처음으로 논문을 쓰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과학자로서 욕심이 많은 노민선이었기에 글라슈트의 비밀을 자신만이 독점하고 싶어했을 것이고, 그래서 우연을 가장하여 최볼테르를 죽였으리라.

박보배의 살해 당시에는 은석범과 함께 밤을 보내서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은석범이 숙면을 취하는 동안에 박보배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살해 현장에서 기계로 만든 원숭이 꼬리가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노민선이 반인반수들과 손을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의 제목이 '눈 먼 시계공'인 이유는 무엇일까?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눈 먼 시계공'에서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통해서 생명체가 진화된다고 주장했다. 정교하게 뭔가를 만들어내는 시계공이긴 한데 눈이 멀었다. 즉, 장기적이고 확실한 계획을 세워서 진화를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험 삼아 일단 해보는 것이다. 소설 '눈 먼 시계공'에서 노민선이 글라슈트에게 감정을 가르친 것도 눈먼 시계공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로봇에게 감정을 가르치면 왜 좋은지, 장차 어떻게 될지 뚜렷하게 예상하지 못하면서도 우승을 위해 일단 가르치고 보는 것이다. 글라슈트가 우승했으니, 로봇에게 감정을 가르치는 방식은 자연 선택에 살아남은 것이고, 이후 감정을 배운 로봇이 격투 로봇의 주류가 될 것이다.

▽우수상 정태희(16·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

'눈 먼 시계공'의 사망자의 전전두엽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을 되살려 범인을 잡는다는 소재는 정말 흥미롭다. 나 또한 뇌 속의 기억을 어떻게 꺼낼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 생각해 본 적이 많다. 또한, 내가 앞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하다.

'눈 먼 시계공'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어디선가 본 느낌이 들었다.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책 '눈 먼 시계공'이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생명을 설계한 시계는 자연선택이며, 그는 자기가 만든 '시계' 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는 '눈 먼' 시계공이라고 한다. 처음에 제목이 미래사회를 만든 장본인인 인간들이 결국 자신들이 만든 사회가 이익만을 추구함에 따라 어떤 사회로 바뀔지 예측하지 못한 '눈 먼 시계공'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라슈트의 이상행동은 이러한 생각을 급반전시켰다.

로봇에게 있어서 이상행동이란 프로그램의 버그이거나, 하드웨어의 이상으로 인한 이상작동일 것이다. 글라슈트같이 거대한 로봇을 중앙처리장치 하나만이 제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은 종료조건을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계속하는 글라슈트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8월 20일 고려대에서 국제 로봇 소프트웨어 컴피티션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전문가 강연에서 한정혜 교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2050년 정도라면 프로세서의 능력이 모든 인간의 뇌의 능력을 따라잡을 수도 있고,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도 복잡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필수적인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보틱스 3법칙에 위배된다. 그것은 로봇이 해야할 '도리'가 아닐 것이다. 글라슈트의 모습은 인간을 너무나도 닮아 있다. 글라슈트의 학습 시스템에서 언급되었듯이, 글라슈트는 타격의 쾌락을 찾아 헤맨다. 163회에서 볼테르가 어쩌면 '위험할 때 더 잘 학습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래밍 했을지도 모른다. 글라슈트의 창조자인 볼테르는 결국 글라슈트가 자신의 생존을 찾아 학습하고 자신의 두뇌를 진화시키도록 하는 '눈 먼 시계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굴까. 300kg이나 되는 글라슈트가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피해자를 해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을성이 부족한 볼테르가 그런 정교한 일을 해내리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여러 번 언급되었듯이, 두개골을 처리하는 '귀신 같은 솜씨'는 가히 놀랄 만하다. 어쩌면 정말 인간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로봇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소설 내내 생각했던 범임은 반인반수족이 가장 적절하겠지만, 진짜 범인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배후에 있는 누군가일 것 같다. 만약 범인이 로봇이라면, 매우 정교한 동작이 가능하고, 신속해야 할 것이다. 여러 대의 로봇이 협업을 할 수도 있다. 이 때 번뜩 생각난 것이 바로 노민선 박사의 '징기스 포에버'이다.

많은 수의 로봇이 협업해서 작업한다면 뇌 적출같은 정교한 작업 정도야 일도 아닐 것이고, 노민선 박사 역시 뇌과학자이기에 이 로봇들에게 명령을 지시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즉 나는 노민선 박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여기에는 은석범 검사와 친분이 있어 은석범 검사가 범인으로 지목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 몫 하지만, 징기스 포에버가 범행 도구로서 매우 탁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이 논리로는 노윤상 원장의 죽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스스로 '고아'가 됐다 하더라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노윤상 원장 살해 방법은 뇌만 가져가던 기존 수법과는 확연히 다른 수법이었고, 동일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측하건데 정기스 포에버를 이용해 살인을 하고자 하는 노민선 배후의 또 다른 사람의 소행일 것 같다.

동아일보에서 처음 소설을 접한 뒤로, 평소 관심있던 뇌과학, 그리고 로봇 공학이라는 주제, 그리고 뇌에 있는 기억을 추출하여 범인을 잡는다는 꿈의 내용 등 모든 것이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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