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12>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22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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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수하(隋何)는 무얼 하고 있습니까?”

한신이 다시 한왕의 사자에게 물었다. 한신이 그렇게 묻는 까닭을 짐작한 사자가 형양에서 보고 들은 대로 일러주었다.

“잔뜩 채비만 갖추고 있을 뿐, 아직 구강으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합니다.”

“팽월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양(梁) 땅으로 돌아갔으나 워낙 초군의 세력이 커서 그런지 별로 움직임이 없습니다.”

사자가 다시 아는 대로 한신의 물음에 답했다.

“알겠소. 잠시 객관으로 돌아가 쉬시오. 내 깊이 헤아려 대왕의 뜻을 받들겠소.”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신이 그렇게 말하고, 사람을 불러 사자를 접대하게 했다.

다음날이었다. 한신이 사자를 불러 글 한통을 내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와서 조나라를 그대로 버려두고 군사를 모두 형양으로 돌릴 수는 없소. 사자께서는 먼저 돌아가셔서 이 글을 대왕께 전해 주시오. 이대로만 하면 대왕께서 큰 낭패를 보시지는 않을 것이오.”

그리고 사자가 떠나기 무섭게 조참을 불러 말했다.

“장군에게 정병 3만을 줄 터이니 형양으로 돌아가 대왕을 지키시오. 다만 가기 전에 한 가지 뒷마무리를 지을 일이 있소. 오성(Y城)에 들러 그곳에 나와 있는 조나라 별장(別將)을 죽이고 군사들을 흩어버리시오. 조나라 군사는 크게 많지 않으나 별장은 척(戚)장군이라 하여 제법 용맹이 있는 듯하니,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시오.”

“대장군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

조참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한신이 차분하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수가 부월(斧鉞)을 받아 싸움터에 나오면 비록 군명(君命)일지라도 받들지 못하는 수가 있소. 형양에 계신 대왕의 걱정을 내 모르는 바 아니나, 여기서 전군(全軍)을 형양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도 병진(兵陣)의 이치에 맞지 않소. 나는 여기 이 상산왕과 더불어 남은 군사 3만을 이끌고 조나라로 쳐들어갈 것이오. 그렇게 하는 게 또한 항왕의 등 뒤로 군사를 내는 길이기도 하니 장군은 너무 괴이쩍게 여기지 마시오.”

“조나라가 작은 나라가 아니고, 진여 또한 그리 만만하게 볼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진여가 수십만 대군을 긁어모아 편히 쉬며 기다리는데, 먼 길을 돌아 고단하고 지친 3만 군사로 어떻게 쳐부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와 함께 형양으로 돌아가 항왕을 멀리 쫓아버린 뒤에 다시 대군을 이끌고 돌아와 조나라를 치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못 믿겠다는 듯 조참이 다시 그렇게 물었다. 한신이 빙긋 웃어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며 대답했다.

“바로 다섯 달 전만 해도 항왕은 3만 군사를 이끌고 천리 길을 달려와 팽성에서 편히 쉬며 기다리고 있던 우리 군사 56만을 쥐 잡듯 한 적이 있소. 싸움터의 강약이 반드시 군사들의 머릿수에만 달린 것은 아니니 장군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 말에 조참도 더는 묻지 않고 한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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