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二. 바람아 불어라

  • 입력 2003년 7월 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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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함께 가는 길(2)

"이게 무엇입니까”

항량이 죽간(竹簡)을 읽어보지도 않고 묻자 범증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우리 새로운 초나라의 내정(內廷)과 외조(外朝)를 제 나름으로 대강 얽어본 것입니다. 한번 훑어보아 주십시오.”

그 말에 항량은 울컥 치미는 짜증을 억누르며 죽간을 펼쳐 보았다. 어차피 회왕(懷王)을 세우고 초나라를 되살린 이상 언젠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절차였다.

그런데 죽간을 펼쳐든 항량은 그 첫머리를 읽고 그대로 죽간 두름을 내팽개칠 뻔하였다. 맨 앞에 <영윤(영윤) 송의(송의)>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의 이자가 초나라를 되살리는 데 무슨 공을 세웠길래 상경(上卿) 중에서도 으뜸인 영윤으로 삼는다는 것이오?”

항량이 못마땅한 심사를 억지로 감추면서 그렇게 묻자 범증이 태평스레 받았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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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왕도 융장(戎裝=전투복)을 예복으로 삼는 전시(戰時)입니다. 전시에, 그리고 전장에서의 영윤은 졸오(卒伍)보다 뒷줄입니다. 게다가 송의는 선왕(先王) 때도 이미 영윤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항량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것은 그 같은 법증의 대답 때문이 아니라 <상주국(上柱國) 진영(陳영)> 이라 쓰여진 다음 죽간을 읽은 까닭이었다. 진영은 2만의 동양(東陽) 군민(軍民)을 이끌고 투항해온 공이 있지만, 하찮은 시골 아전바치였고 검수(黔首=평민) 출신이었다. 그런 진영을 상경의 하나인 상주국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다섯 현(縣)까지 내려[封五縣] 높이고 있는 조정의 영윤 자리라면 송의를 앉혀 안될 게 없었다.

“소평(召平)도 상대부(上大夫)에 앉혔습니다.”

항량의 마음속을 읽었는지 범증이 다음 죽간에 쓰인 것을 이죽거리듯 말로 들려주었다. 소평이라면 이미 죽고 없는 진왕(陳王=진승)의 명을 내세워 항량을 상주국으로 삼은 뒤, 대군을 이끌고 장강을 건너게 만든 자였다. 그 사이 그가 한 거짓말이 모두 드러나 허풍쟁이가 되어 있는 그를 상대부로 앉힌 걸 보고서야 항량도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범증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요컨대 구색은 갖추되 실제로는 별 힘도 권위도 없는 조정과 백관(百官)이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옛적에는 아득히 올려본 문반(文班) 벼슬과 지금까지는 듯도 보도 못한 사람의 이름이 함께 적힌 죽간이 이어지더니, 무반(武班)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서 문반 때와 전혀 달랐다. 범증 자신은 그때까지도 사람들이 별로 무겁게 여기지 않던 군사(軍師)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계포 종리매 환초 용저 같은 모사와 맹장들도 빈객(賓客)이나 사마(司馬) 사인(舍人) 같은 낮은 직위에 그쳤다. 항우가 상장군(上將軍)으로 된 게 별날 정도였다.

하지만 별장(別將)들은 또 달랐다. 낮아야 공(公)이나 군장(郡長=군수)이요, 웬만하면 후(侯)나 군(君)이었다. 이를 테면 경포(경布=英布)는 당양군(當陽君)이 되었고, 오예와 유방은 는 파군(番君)과 패공(沛公)을 지켰다. 거느린 세력에 비하면 대개는 지나친 봉작이었다.

“그런데 - 나는 무엇입니까?”

죽간 두름을 다 들쳐도 자신의 이름이 없자 항량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군(君)이 어떠하겠습니까? 무신군(武信君) 쯤으로 해두면 문신의 반열에도 들지 않고 무장의 품계에서도 약간 비껴서 있으면서 존귀와 위엄을 겸할 수 있습니다.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나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과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君)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가깝게는 우리 초나라의 춘신군(春信君)도 있습니다.”

처음 범증이 군(君)을 들고나올 때 항량은 울컥 화까지 치밀었다. 떠도는 무리 몇을 이끌고 작은 마을 하나를 차지해도 공(公)이요, 골짜기나 들판을 끼면 후(侯)나 군(君)을 자칭하던 때라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범증이 이른바 <전국말(戰國末) 사군(四君)>을 차례로 들먹이자 항량은 그 속 깊은 배려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넓은 봉토와 큰 세력을 가지고 천하를 주무르던 그들. 백성들의 사랑을 받아 왕조차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던 그들의 독특한 역할과 위치를 항량에게 제시하고 있는 셈이었다.

“좋습니다.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항량이 환하게 펴진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범증은 새 죽간 하나를 가져오게 해 <무신군 항량> 이라고 써넣었다. 그리고 마음써서 덤이라도 얹어주듯 말했다.

“이곳 설현은 싸움터에 가까워 임금께서 머무실 땅이 못됩니다. 남쪽 초나라 옛 땅 깊숙한 곳에 있는 우이(우이)를 도읍으로 삼아 우리 대왕(大王)을 그리로 옮기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때 입만 살아 시끄러운 구닥다리 먹물들과 용케 살아남은 옛 조정의 벼슬아치들까지 함께 쓸어보내고 이곳에는 목숨 바쳐 무신군을 따를 장졸들만 남기면 모든 어지러움은 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 말은 병권(兵權)만 굳건히 장악하고 있으면 문신(文臣) 관료의 병폐는 크게 걱정할 게 없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범증의 말을 옳게 여긴 항량은 그대로 따랐다. 범증이 적은 대로 벼슬아치들을 세우고, 의논을 갖추어 새 초나라의 도읍을 남쪽으로 수백리 떨어진 우이로 정했다. 그리고 새 회왕과 그 조정에 약간의 군사를 딸리어 우이로 내려보낸 다음 자신은 진나라와의 결전을 위해 대군을 정비했다.

아직 항량이 군사를 내기 전에 항백을 앞세운 장량이 찾아와 말했다.

“무신군께서는 초나라 후예를 찾아 왕으로 받드시어 망해버린 초나라를 되세우셨습니다. 이는 초나라 유민들뿐만 아니라 천하가 감탄해 우러를 일입니다. 제 부조(父祖)의 나라 한(韓)도 망한 지 여러 해 되었으나 그 유민들이 나라를 되살리려는 마음은 초나라 사람들에 못지 않게 간절합니다. 지금 살아남은 왕족 중에는 횡양군(橫陽君) 성(成)이 가장 밝고 어진데, 그를 왕으로 세우고 한나라를 되살려 우리편을 늘리는 것[益樹黨]이 어떻겠습니까?”

항량이 그 말을 들어 장량으로 하여금 횡양군 한성(韓成)을 찾아오게 했다. 진작부터 한성이 있는 곳을 알아두었던 장량이 다음날로 한성을 항량 앞에 데려왔다. 항량은 한성을 한왕(韓王)으로 세우고 장량을 사도(司徒)로 삼은 뒤 군사 천여 명을 주어 서쪽으로 한나라의 옛 땅을 되찾게 했다.

항량이 그렇게 장량의 말을 따라 준 데는 육국(六國)의 후예를 되세워 자신의 세력을 늘린다는 원래의 목적 이외에, 그렇게 함으로써 장량과 유방을 갈라놓는다는 뜻도 있었다. 유방과 장량 모두 따로 떼어놓고 보면 미덥고 정이 가는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있는걸 보면 까닭 모르게 마음이 어두워지는 항량이었다.

그런 항량과는 달리, 장량이 떠난다는 말을 듣자 유방은 쓸쓸하면서도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백수건달로 저잣거리를 떠돌던 시절부터 유방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넘쳐 났다. 하지만 대개는 장돌뱅이나 농투성이 같은 밑바닥 출신들이라, 손발로 부리거나 가슴과 배[心腹]로 삼을 수는 있어도 머리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장량을 만나 그 슬기와 꾀를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다 싶었는데, 몇 달 안돼 떠나게 되었으니 상심이 아니 될 수 없었다.

“처음 만날 때 말씀드렸듯이 제게는 아직도 위로 삼대(三代)가 한(韓)나라에 입은 은의를 갚는 일이 먼저입니다. 한나라가 다시 서고 한(韓)왕실이 안정되면 반드시 돌아와 패공을 모시겠습니다.”

떠날 때 장량은 유방을 찾아보고 그렇게 말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망해버린 부조(父祖)의 나라를 잊지 않고 되살리려 애쓰는 선생의 충심에 감동했소. 장부는 은원(恩怨)이 분명해야 되는 법이외다. 하루 빨리 복국(復國)의 뜻을 이루고 나와 다시 만나 정을 나누게 될 날이 오기를 빌겠소.”

유방도 그런 말로 장량을 선선히 놓아주었으나 그의 마음은 줄곧 장량을 뒤쫓으며 살피고 있었다. 기세를 탄 한성과 장량이 옛 한나라의 성을 대여섯 개나 잇따라 떨어뜨렸을 때는 제 일처럼 기뻐하였고, 다시 진군(秦軍)이 그들을 되받아 쳐서 애써 얻은 성을 빼앗아갔다는 소문을 들으면 자신이 성을 잃은 것처럼 안타깝고 분하게 여기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성과 장량이 모든 근거를 잃고 많지 않은 군사들과 더불어 영천(潁川) 어름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열 일을 제쳐놓고 장량에게로 달려가 한(韓)나라부터 먼저 세워놓고 보고싶었다.

한편 그 사이 크게 군사를 낼 채비를 갖춘 항량은 한바탕 크게 싸울 곳을 찾고 있었다. 사람을 풀어 진나라의 주력 장함의 대군이 어디 있는가를 수소문하고 있을 때, 위왕(魏王) 구(咎)가 주불(周불)을 보내 급한 전갈을 청해왔다.

“진장(秦將) 장함이 진왕(陳王=진승)을 쳐부순 뒤 북으로 군사를 몰고 올라와 우리 위나라를 휩쓸고 있습니다. 위왕께서는 전군을 들어 장함의 대군과 임제(臨濟)에서 맞섰으나 승세를 탄 적의 날카로운 기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성안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힘을 다해 버티고는 있어도 하루하루가 힘겹기 그지없습니다. 이에 저를 내보내 제나라와 초나라에 도움을 청하게 하신 바, 다행히도 제나라는 제왕(齊王)께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구원을 오시기로 약조하셨습니다. 지난 육국(六國) 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위나라가 없어지면 제나라도 초나라도 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신군께서는 어서 빨리 대왕께 고하시어 제나라와 함께 초나라도 저희 위나라의 위급을 구하도록 해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찾고 있던 장함이 제발로 찾아온 격이었으나 항량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주불을 군막에서 내보내 객관에서 쉬게 한 뒤 가만히 범증과 의논했다.

“군사께서는 어떻게 했으며 좋겠소?”

주불이 처음 구원을 청할 때부터 줄곧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던 범증이 말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脣亡齒寒], 위왕은 마땅히 구해주어야 합니다. 다만 이왕 제왕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간다니, 우리는 믿을 만한 장수 하나와 약간의 군사를 보내 저들의 기세만 올려주면 되겠습니다. 장함 하나를 상대로 세 나라가 전력을 다한다면 그 또한 세상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습니까? 무신군께서는 되도록 힘을 아껴 함곡관(函谷關)을 깨뜨리고 함양(咸陽)으로 밀고들 때에 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항량도 그 말이 옳은 듯했다. 곧 종제 항타(項타)를 장수로 삼고 군사 5천을 떼어주며 위나라를 구하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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