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에서]연극인들 “추석은 서글픈 날”

  • 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32분


추석은 연극인에게 ‘서글픈’ 날이다. 추석 연휴를 일터(공연장)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연뿐 아니라 여러 이유로 10년 넘게 고향을 찾지 못하는 연극인도 많다.

노처녀 여배우들의 고민은 남다르다. ‘돌날’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H씨는 명절 때 집에 가는 것이 좋진 않다. 명절이면 가족들에게 ‘서른여섯살 먹도록 결혼은 안하고 무슨 짓이냐’며 핀잔을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추석에도 “공연 때문에 못 간다”고 얼버무렸다.

추석 때 대학로 식당들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래서 배우들은 밥을 굶거나 아예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기도 한다.

마흔을 눈앞에 둔 연극 ‘라구요’의 연출자 B씨는 명절날 새벽부터 공연장에 나와 있기로 유명하다. 4형제 중 유일한 노총각이어서 집안 눈치를 봐야 하지만 그의 후배 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고향에 가지 못한 후배들을 위해 집에서 만든 송편과 고기 등을 싸들고 온다. 이 때문에 그의 집 차례상에는 올릴 음식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기획사들은 이런 연극인들을 위해 통상 추석 선물과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 비용을 수재민 성금으로 내기로 한 곳도 있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수재민에게 연극인들의 작은 정성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남기웅 공연기획 ‘모아’ 대표 nammo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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