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01…초이레 (9)

  • 입력 2002년 8월 18일 17시 40분


이렇게 가까운 데서! 가증스러운 나머지 시계가 뒤틀리고 삼나무 가지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희향은 배어 나오는 눈물을 느꼈다. 하느님, 부탁합니다, 이런 데서 울면 너무나 비참합니다, 아무쪼록, 이 눈물이 눈에서 그치고 볼을 타고 흘러내리지 않기를…, 하고 눈물이 마를 때까지 달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두 손에 든 짐이 무거워져 희향은 배다리 끝에 덜썩 주저앉았다. 물이 흐르고 있다, 되풀이된다, 참는다, 내일도, 물이 흐르듯 아픔을, 견딘다, 되풀이된다, 그 사람은 내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드러내놓지는 않아도, 숨기지도 않는다. 이렇게 가까운 데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장소에서 간통을 하고 있으니. 희향은 코끝에서 물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 사람의 손이 저고리 고름을 풀어, 그 사람 눈앞에서 치마를 벗은 첫날 밤, 나는 조상님께 굳게 맹세했다. 이 사람과 평생을, 어느 쪽이든 생명이 다할 때까지 고락을 함께 하며, 이 사람의 아내일 것을 맹세합니다.

희향은 일어나 여자의 집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배다리를 건넜다. 끼익, 끼익, 끼익. 바람이 불고,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그러자 갑자기 허리 아랫도리가 바람에 둥실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남루에 하얀 여자가 서 있었다. 순간, 그 여자인가 싶었는데, 아니다, 아랑이다. 나를 보고 있다. 무섭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맥도 빨라지지 않았다. 꽃향기와 더불어 슬픔이 대기에 떠다니고 있다. 수용이 죽었을 때도 이런 향기가 났다. 희향은 슬픔에 떠는 대기를 깊게 들이쉬고 아리랑을 불렀다.

송림 속에 우는 새 처량도 하다

아랑의 원혼을 네 설워하느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영남루 비친 달빛 교교한데

남천강 말없이 흘러만 가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숨이 편해지고 눈에 비치는, 비치지 않는 모든 것이 소리를 빚기 시작했다. 졸졸졸졸 짹짹짹짹 땡- 땡- 음매- 음매- 제첩이요- 제첩 응애- 응애- , 우근이 날 부르고 있다. 희향의 젖가슴으로 젖이 차올랐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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