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77…아리랑(16)

  • 입력 2002년 7월 19일 18시 11분


학생들이 제물로 내민 목소리는 어느 누구도 칭송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섬기지 않은 채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 속으로 꼬리를 감췄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

“차렷!”

“경례”

선생은 붕 붕 붕 하고 도, 솔, 도 화음을 눌렀다.

우철은 말을 제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파아파아파아파아, 점심 시간까지는 아직도 2교시나 남아 있다…파아파아, 숨이…갑갑하다, 파아파아파아파아. 충성스런 신민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조선 땅에도 아름다운 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왜에 불고 있는 바람이 있다면, 조선에 부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첫 울음 소리를 울려 퍼뜨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목숨 구걸을 지우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밤을 잉태하고, 헤아릴 수없이 많은 아침을 낳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불었으며, 내가 죽고 난 후에도 불, 내 셔츠를 돛처럼 부풀리고 같이 달려주는 바람.

바람은 희미한 깽깽이풀 냄새로 우철의 코를 간지럽히고 땀이 밴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더듬게 하고, 날아오르는 나뭇잎처럼 우철의 귀속에서 밀양 아리랑의 멜로디를 일깨웠다.

광풍이 불어요 광풍이 불어요

삼천만 가슴에 광풍이 불어요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 보세

김인수와 박동민이 쉬는 시간이면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있는 우철을 놀려주려고 노래를 불렀다.

울려퍼지는 포성, 쏟아지는 탄환

거친 파도 일렁이는 갑판 위에

어둠을 뚫는 중령의 외침 소리

우철은 어딨나, 우철이 없구나

돌아본 우철은, 그런 노래 부르지 말라고 울컥 화를 내려는 성대에 힘을 주고, “너희들, 조용히 해!”라고 소리를 지르며 둘을 쏘아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우철은 비스듬히 앞으로 뻗어 있는 자기 그림자를 짓밟고 뛰었다. 앗! 아야! 그림자가 비명을 질렀다. 적함이 나타나 다가오니 황국의 흥망이 오직 이 일거 각기 분려노력하라고 돛대에 신호의 깃발 오른다 하늘은 맑으나 바람 일어 쓰시마 앞바다에 파도가 인다 그러나 우철이 흥얼거린 노래는 광복군 아리랑이 아니라 일본해 해전이었다. 운동장 구석에 있는 우물에서 펌프를 양손으로 누르면서, “제길” 하고 우철은 금지된 조선말을 내뱉고는 퍼올린 우물물로 목소리를 얼버무렸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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