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버리고 가자]법정스님/지역감정 극복을

  • 입력 1999년 11월 30일 19시 52분


이 세상은 우리들 자신이 만들어간다. 오늘과 같은 세상은 일찍이 우리들이 그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아온 결과로서 우리 앞에 전개된 것이다.

20세기가 한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 버리고 가야할 것들이 어찌 한두 가지이겠는가. 뭣보다도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금세기에 들어서 5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주의라고 할 만한 문제는 없었다. 간혹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 상대편으로부터 어떤 피해를 보았을 때 그의 출신지를 거론할 정도였다. 따라서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서도 그의 능력을 문제삼았지 지역적인 편견이나 차별을 두지 않았다.

지역주의가 공공연히 바람을 일으킨 것은 70년대에 들어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였다. 지원유세에 나선 일부 정치꾼들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긴 데서 확산 심화되었다. 지지기반이 취약한 5·16 군부세력이 무력으로 탈취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이용했던 것이다.

▼이땅에서만 볼 수 있는 망국병▼

좁은 땅덩이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것만도 통분할 일인데, 그 위에 동과 서로 갈라놓고 갈등과 대립으로 아옹다옹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로울 수 없는 이땅의 비극이다.

요즘에도 못된 정치꾼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걸핏하면 특정지역에 가서, 생업에 바쁜 순진한 주민들을 끌어모아 지역감정을 충동질하면서 군중집회를 갖는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와 이 사회에 득이 될 일이 무엇인가. 어느 세월에 가서야 정치권에서 이런 현상이 해소될지 실로 한심스럽다.

이것이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세상이라고, 다음 세기에 올 우리 후손들에게 떳떳하게 물려줄 수 있는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 땅의 정치꾼들은 여야를 물을 것없이 전혀 변할 줄을 모른다. 그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번쩍거리고 살면서 국민에게 불안과 충격과 부담만을 끝없이 안겨 주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자신들이 어기고 있으면서도 국민 앞에 사죄할 줄도 모르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정치꾼들 이젠 탐욕 버리라▼

잊어버릴 만하면 한 차례씩 폭력을 휘둘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이비 중들 때문에 이 땅의 불교계가 피해를 보듯이, 정치도의를 망각한 채 지역감정을 부추겨 정치적인 야망을 이루려는 사이비 정치꾼들 때문에 이땅의 정치풍토는 백년하청이다.

현직 대통령 자신이 지역감정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수혜자임은 세상이 익히 알고 있다. 임기 중에 지역주의를 말끔히 청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한결같이 분투노력하여, 적어도 정치권에서 더 이상 지역주의가 바람을 일으킬 수 없게 한다면 그 어떤 업적보다도 높이 평가될 것이다.

우리가 이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통일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남쪽 안에서조차 갈가리 나뉘고 찢기어 하나를 이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체제와 익혀온 업이 다른 남과 북이 하나를 이룰 것인가.

들뜨고 휩쓸리기 쉬운 감정은 냉철한 이성과 의지로써 다스릴 수 있다. 우리 세대에 와서 일어난 지역주의이기 때문에 우리 세대에서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

법정〈스님〉

다음회 필자는 은희경씨(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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