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대통령의 비우지 못한 마음

  • 입력 1997년 3월 7일 19시 57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아직도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 미련(未練)도 버리지 못했다. 물론 사과담화 이후 국정운영스타일이 눈에 띄게 달라지긴 했다. 개각내용을 미리 언론에 흘려 여론검증을 거치고 권한의 대폭 당정(黨政)이양을 천명한 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깜짝쇼를 즐기던 옛날과는 판이하다. 진작 이랬다면 인사(人事)가 망사(亡事)라는 말은 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겉모양이 바뀌었다고 속마음까지 바뀐 것으로 보기는 이르다. ▼「人選」겉모양만 바뀌어▼ 가령 이번 개각때 신임 총리의 각료제청권을 존중하며 협의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바람직했다. 그러나 인선결과는 대통령의 구상 그대로였다고 한다. 李壽成(이수성)전총리의 집권여당 상임고문임명도 그렇다. 아무리 당총재를 겸했다 해도 최소한 본인의 입당의사쯤은 미리 물어보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도 총리교체 당일 카폰으로 전격 통고했다니 이런 독단이 어디 있는가. 미련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 부자(父子)가 한묶음으로 세간의 동네북이 된지는 오래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국민앞에 머리숙여 사죄하는 처절한 담화를 발표한지도 엊그제다. 한보사건의 행정적 도의적 문책이라는 개각배경 설명이 있자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는 비아냥도 없지않았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해도 대통령으로서는 모멸감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참담한 심정이기는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러고도 무엇에 연연한다는 느낌을 계속 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올 연말 차기 대통령당선자가 나오기까지 정국은 극히 유동적일 것이다. 리더십과 구심점의 공백속에 국정이 표류하면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다. 정권이 순항(順航)했을 때도 임기말이면 어렵다. 하물며 지금은 정권이 좌초한 상태다. 좌초한 정권의 배를 민심의 바다로 다시 띄워 항해를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는 선장의 결심과 기량에 달렸다. 현정권의 가장 큰 비극은 도덕성과 신뢰성의 상실에 있다. 땅에 떨어진 신뢰부터 회복하지 않고서는 될 일이 없다. 당정개편이라는 뉴스의 홍수로 국면이 전환되고 있다고 내심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실제 요며칠 신문과 TV에서 「한보」뉴스가 밀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엄청난 민심이반과 국가적 난국을 몰고온 근본원인이 한보추문임을 잊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성을 뿌리째 뒤흔든 한보의혹을 그냥 놔둔 채 위기탈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민심을 너무도 모르는 환상이다. 제거되지 않은 한보뇌관은 계속 이 정권을 괴롭힐 것이며 남은 임기1년이 무사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국민의 뜻을 바로 읽는다면 비록 아들일지라도 한보청문회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 그런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제 대통령의 각오는 한가지로 충분하다. 오로지 자신을 뽑아준 국민과 나라를 위해 몸을 낮추고 던져 멸사봉공(滅私奉公)하겠다는 봉사정신이다. 말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게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신뢰회복이 가능해진다. 그럴 때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설계에 나서는 국민적 동참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국민이 지켜볼 「남은 1년」▼ 그러자면 국정을 만기친람(萬機親覽)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 대통령을 내손으로 만들겠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 퇴임후를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全斗煥(전두환)씨는 퇴임후 수렴청정하는 상왕(上王)을 꿈꾸고 盧泰愚(노태우)씨 또한 퇴임후를 위해 엄청난 재물을 챙겼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전임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속죄하는 심정으로 남은 1년 최선을 다하고 그런다음 극민들의 하회(下回)를 기다려야 한다. 남중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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