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위기앞에서 정쟁 자제… ‘관용과 통합’의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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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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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한 사람도 사랑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인류를 사랑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

29일로 노르웨이 오슬로 정부청사 거리와 우퇴위아 섬에서 한 미치광이의 살육극이 벌어진 지 일주일이 됐다. 기자가 처음 도착한 23일 시민들의 표정에서 느껴졌던 불안과 슬픔은 찾기 어렵다. 26일 시민추모제가 있었던 오슬로 대성당 앞 광장은 거대한 꽃밭으로 변했다. 노르웨이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선 사람들의 차분함이었다.

추모제 날 도로까지 밀려 나온 추모 인파, 빨간 신호를 무시하는 관광객이 넘쳤지만 운전자들에게선 찌푸리는 표정을 발견할 수 없었다. 76명이 숨지고 며칠이 지나도록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아도 정부나 경찰을 비판하는 사람이 없다. 그 흔한 플래카드 하나 내걸리지 않았다. TV에는 헌화 장소에서 포옹을 하거나 서로 위로하며 흐느끼는 시민의 모습 정도가 비칠 뿐이다. 6일 동안 체류하면서 시내가 좁아 주로 걸어 다녔는데 자동차 경적소리를 듣지 못했다.

엘리트 사회도 마찬가지다. ‘관용과 통합’이 지배적인 문화였다. “말과 행동에서 법을 지키기만 한다면 어떤 경우라도 사람은 극단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으며 용인돼야 한다. 사상을 탄압해선 안 된다”(모르텐 베르그스모 평화연구소 수석연구원). 기자가 만난 학자, 연구원, 언론인들은 마치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사상의 자유와 인권, 이민자에 대한 관용과 통합을 얘기했다. 그리고 이번 참사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는 여전히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참사로 가족이나 친인척을 많이 잃은 집권 노동당, 반이민·반이슬람 정책을 내세운 진보당, 각종 사회단체 중 어느 곳도 논평이나 성명으로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위기 앞에서는 정쟁을 자제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행동을 삼가는 지도층과 지식인의 품위였다.

최고형이 21년 징역형이라는 것과 호화 교도소 논란에 대해서도 그들은 “세계 최고 교정시설에서 교육받게 해 다시 사회로 융화시켜 함께 살아가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재범률이 20%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형벌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시민들은 “한 사람 때문에 법과 국가 정책을 바꾼다면 범죄자 한 명에게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 관용, 포용. 노르웨이가 소중히 지켜온 가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고집이자 자부심이었다.

―오슬로에서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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