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그 사건 그 후]<6>외교부 특채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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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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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가지 쇄신안 ‘공정’실험… 국장급에 인사권 나눠줘

딸의 외교통상부 5급 공무원 특별채용 논란에 휩싸였던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9월 3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딸의 외교통상부 5급 공무원 특별채용 논란에 휩싸였던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9월 3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땐 억울한 정도가 아니라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이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0월 초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딸 특채 사건 이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던 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차관 시절 아들의 고시 합격을 위해 외무고시 과목을 바꿨다는 의혹에 “난 그렇게 천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맞서며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홍 전 장관은 “유 전 장관이 잘못하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외교부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며 “글로벌 시대에 외교가 없으면 나라의 미래도 없다는 생각을 (당시) 많이 했었다”고 회고했다.

딸의 외교부 특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프랑스어 전문가로 특채된 딸이 아비가 고위직이라는 이유로 도매금으로 (의혹이) 제기돼 피해를 본 것”이라며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9월 초 장관 딸 특채 의혹으로 불거진 파문은 외교부 전반의 채용 비리 의혹과 불공정한 인사 관행까지 한꺼번에 도마 위로 끄집어내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지금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지만 외교부는 이를 계기로 그간의 잘못된 인사 관행을 바로잡는 대수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꺼번에 몰아닥친 변화에 직원들은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인사 문책으로 이어진 특채의 파장

특채 파문 이후 징계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실무진이었다. 당시 유 전 장관 딸 인사 문제를 처리했던 한충희 인사기획관은 보직에서 해임됐고 인사라인에 있던 임재홍 기획조정실장은 보직대기 상태다. 외교부는 이후 외교부 인사라인의 기획조정실장과 채용평가팀장 자리를 행정안전부 출신에게 내줬고, 일부 전문가 채용을 제외한 모든 특채 업무도 행안부로 넘겼다.

임 전 실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외교부 인사를 담당했던 책임자로서 신뢰에 부응하지 못해 한스럽고 죄송하다”며 “다만 이번 일을 반성하면서 외교부가 본래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특채 파문의 당사자였던 유 전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 직전에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이후 스탠퍼드대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국내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유 전 장관이 당당하게 나서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졌더라면 외교부의 체면이 지금처럼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채 파문 이후 유 전 장관과 신각수 1차관이 서울고 출신 선후배임을 빗댄 ‘서울랜드’와 두 사람이 외교부를 좌지우지했다는 의미의 ‘유신(유명환-신각수)시대’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정무직인 신 차관은 현직에 그대로 있다.

○ 외교부의 다양한 인사제도 실험

특채 파문 이후 외교부는 35가지 인사쇄신안을 한꺼번에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안들이 대략 기대효과 측면만 부각된 채 아이디어 수준에서 곧바로 시행되는 것이어서 직원들의 불안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외교부는 그동안 장관이 행사하던 인사권을 국장급이 행사할 수 있도록 기존 인사위원회와 별도로 국장급이 참여해 과장급 이하 인사를 결정하는 제2인사위원회를 도입했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과 퇴출을 하는 민간기업 방식의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계량화하는 작업도 검토하고 있다.

인사 권한을 분산한다곤 하지만 정작 친분 있는 직원을 챙겨주는 외교부 문화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직원들의 불만은 다른 곳에서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외교부에 에너지외교와 관련된 공관 강화를 지시했다. 과장급 이하 선진국 공관 15∼20개 자리를 없애고 대신 콩고민주공화국 인도 등지에 인력을 보내라는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오가는 이른바 ‘냉탕-온탕 순환근무’ 원칙이 깨지고 냉탕에서만 계속 근무하는 사람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수많은 실험은 결국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교부 내에서는 어차피 한 번쯤은 겪어야 할 홍역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특채 파동으로 외교부의 이미지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것”이라며 “우수한 인재들이 외교부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되돌릴 수 없는 파장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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