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전 파키스탄의 설득, 모즈타바의 쪽지…88분 전 ‘지옥’ 막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8일 20시 00분


트럼프, 시한 12시간전 “문명소멸”…하르그섬 공습
밴스 “지금껏 사용 안한 수단 쓸수도” 핵공격 시사
파키스탄 “2주 휴전-호르무즈 개방” 제안…극적 반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04.07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04.07 워싱턴=AP 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 합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 마감 시한(미 동부 기준 7일 오후 8시, 한국 시간 8일 오전 9시)을 88분 앞두고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문명 파괴’ 위협과 이란 원유 수출 핵심 인프라가 갖춰진 하르그섬 내 군사시설 공습으로 확전 우려가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파키스탄과 중국의 막판 중재와 물밑 외교 접촉이 이어지며 가까스로 휴전이 성사된 것이다.

●휴전 12시간 전 ‘문명 소멸’ 위협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했던 이란 발전소 등에 대한 공격 유예 시한을 약 12시간 앞둔 7일 오전 8시경 사실상 개전 뒤 가장 높은 수위로 이란을 압박했다. 그는 “오늘 밤 한 문명(civilization) 전체가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날 오후 8시까지 합의가 불발될 경우 예고한 대로 이란의 발전소와 교량 등 민간 인프라를 초토화시키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국제법 위반 논란이 제기됐고, 이란이 ‘청년 인간 사슬’로 저항을 예고한 상황에서도 ‘벼랑 끝 수사’를 내놓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군은 7일 오전 이란 최대 원유 수출 터미널인 하르그섬의 군사시설을 50차례 이상 공습했다. 하르그섬은 이란 원유 수출 물량의 90%가 거쳐 가는 터미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핵심 자산(crown jewel)’이라고 칭했을 만큼 이란 경제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이란은 강하게 반발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중동 주요국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문명 소멸’ 위협 직후 이란이 중재국을 통한 미국과의 간접 협상에서도 이탈했다. 공격 유예 시한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외교 채널이 사실상 멈추면서 전면 충돌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졌던것이다.

이 같은 긴장 고조 상황에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란을 회유하는 강온 전략을 구사했다.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총선 승리를 지원하기 위해 헝가리를 방문 중이던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행동을 안 바꾸면 지금껏 쓰지 않은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란의 답을 기다리고 있으며 공은 이란 코트에 있다”며 물밑 협상을 강조했다. 그는 “유예 시한 전까지 이란에서 답변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이란의 출구를 열어주려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또 벤스 부통령의 ‘지금껏 쓰지 않은 수단 동원’을 놓고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 중재 핵심 역할 한 파키스탄

일촉즉발의 상황을 반전시킨 건 그간 핵심 중재국 역할을 해온 파키스탄이었다.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협상 시한을 약 5시간 앞두고 X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기간을 2주 연장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샤리프 총리는 이란을 향해서도 “같은 기간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고 양측이 휴전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또 파키스탄 실권자인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은 미국 측이 제안한 15개 항목의 휴전안을 이란 측에 전달하는 등 극비리에 물밑 협상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도 샤리프 총리와 무니르 참모총장은 각각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는 등 양국 지도부와 직접 소통 채널을 가동해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파키스탄 안보 전문가를 인용해 “파키스탄이 지금처럼 백악관에 강력한 접근권을 가졌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키스탄이 중재자로 나선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무니르 참모총장의 긴밀한 신뢰 관계가 한몫했단 분석이 나온다. 무니르 참모총장은 트럼프 가문과 연계된 스테이블 코인을 국경 간 결제에 도입하기로 한 ‘크립토 딜’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무니르 총장을 ‘가장 좋아하는 야전 원수’, ‘대단한 전사’라고 수차례 치켜세운 바 있다.
파키스탄은 그간 중재국 역할을 자임했던 카타르와 오만 같은 걸프국과 달리 미군 기지나 미군 이용 시설이 없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파키스탄은 미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이란과는 약 9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인구의 약 20%인 2500만 명이 시아파(시아파 종주국은 이란)라 긴밀한 소통 채널을 가동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美 매체 “모즈타바의 ‘쪽지 지시’ 있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쪽지 지시’가 휴전으로의 급선회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7일 “협상 시한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모즈타바가 전쟁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협상단에게 ‘합의를 향해 움직이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모즈타바는 2월 28일 전쟁 개시 후 부상을 입고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메신저를 사용하면 위치가 드러날 수 있어 쪽지로 소통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반면 휴전 합의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배제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키스탄 등 중재국들이 이스라엘에는 접촉을 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당국자는 휴전 전날 밤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휴전 문제로 전화통화를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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