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미국, 이스라엘과 맞서고 위기 상황에서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란 정부가 8일(현지 시간) 알리 하메네이의 최고지도자(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의 차남 모즈타바(57)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한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이같이 평가했다.
앞서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차기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던 모즈타바는 1989년부터 37년간 이란 최고 권력자로 군림한 하메네이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반(反)미국·반이스라엘 노선을 계승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또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건 이란 정권의 핵심인 혁명수비대, 강경파 성직자와 정치인들이 전쟁이란 위기 속에서 결속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친(親)이란 성향인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반군 등도 모즈타바 선출을 환영했다.
특히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는 엘리트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는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직후 그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선언했다. 이란 정부의 안보수장인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도 “새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촉구했다.
NYT, 알자지라방송, 액시오스 등은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것을 두고 미국,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란이 분명한 저항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8일 반관영 파르스통신을 통해 최소 6개월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격렬한 전쟁에 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전쟁이 격화되고 동시에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아버지보다 더 강경할 듯”
모즈타바는 하메네이가 생존했을 때 이란 정부에서 공식적인 직책은 없었지만 ‘막후 실세’, ‘문고리 권력(gatekeeper)’으로 통했다. 또 국정 운영에 깊숙이 개입하며 후계자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그의 공개 발언이나 활동 등은 드러난 게 거의 없다. NYT는 모즈타바에 대해 “이란에서도 미스터리한 인물(Mysterious Figure)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다만, 이란 안팎에선 그가 혁명수비대와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특히 그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유명한 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의 실질적 리더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당시 몰수한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비밀 국영기업 세타드, 국영방송 IRIB 등의 운영도 좌지우지하며 ‘칼’ ‘돈’ ‘언론’을 모두 움켜쥐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의 성장 과정도 주목을 받고 있다. 액시오스에 따르면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반서방주의를 강조하는 고위 성직자 밑에서 공부했다. 또 1980년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근본주의 이념을 강조했던 것으로 유명한 ‘하비브 대대’에서 복무했다. 액시오스는 모즈타바에 대해 “부친보다 더 강경한 성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모즈타바보다 더 미국을 증오하고 저항할 강력한 개인적 이유를 가진 이란인은 없을 것”이라며 “이번 공습으로 부친과 모친, 아내를 잃은 그가 개인적 비극 속에서 지도자 자리를 승계한 만큼, 미국 측 요구에 따르거나 물러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3일 “하메네이 후계자는 누가 되든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8일 모즈타바가 선출됐다는 발표가 나기 전 미 A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승인을 받지 않으면 그는(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모즈타바에 대한 공격이 발생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 ‘순교자 가족 이미지’로 세습 논란 정면 돌파 시도
AP 뉴시스 모즈타바의 선출을 놓고 이란 이슬람 혁명의 명분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혁명 주도 세력이 1979년 신정일치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왕정의 왕위 세습을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며 모즈타바가 부모와 아내 등을 공습으로 잃은 상황이 그에게 ‘순교자 가족’이란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줬단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와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으로 모즈타바 또한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이런 배경을 토대로 강경파들은 이런 모즈타바를 선호했을 것이란 뜻이다.
최근 이란 반정부 시위 유혈 진압으로 정권과 신정일치 체제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강하다는 점도 그의 약점으로 꼽힌다. 특히 모즈타바는 바시즈를 앞세워 강경 진압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실제로 2022년 ‘히잡 착용 반대 시위’ 당시 시위대들은 “모즈타바, 당신이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에 죽기를 바란다”는 구호를 외쳤다.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선출 소식이 알려진 뒤 테헤란에서 ‘모즈타바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들려왔다고 NYT가 보도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중동학)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암살 시도 가능성, 이란 내부의 누적된 불만 등으로 모즈타바가 체제가 제대로 자리 잡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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