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인질로 감옥서 6년… 아내가 돌아왔다[사람,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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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동참 英 6200억원 안갚자
친정 온 나자닌 씨 간첩혐의 체포
남편 단식투쟁-여론 압박에 英 상환
극적 석방으로 영화같은 가족 재회

이란에 억류됐다가 16일 풀려난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 씨(가운데)가 영국 옥스퍼드셔 공항에서 남편 리처드 랫클리프 씨와 딸을 6년 만에 만나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이란에 억류됐다가 16일 풀려난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 씨(가운데)가 영국 옥스퍼드셔 공항에서 남편 리처드 랫클리프 씨와 딸을 6년 만에 만나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아내가 차를 마시고 싶을 것 같아요. 만나면 가장 먼저 차를 타줄 겁니다.”

영국인 리처드 랫클리프(46)는 16일 이란의 감옥에서 6년 만에 풀려난 부인을 맞으러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의 부인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44)는 2016년 딸을 데리고 이란의 친정을 방문했다가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이란은 나자닌이 영국 자선단체 톰슨로이터재단에서 일하며 체제 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그를 테헤란 공항에서 체포했다. 곧 징역 5년형이 선고됐고, 갓 돌이 지난 딸은 친정에 보내졌다.

졸지에 부인과 딸을 볼 수 없게 된 리처드는 영국 총리와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가족을 돌려보내 달라고 수차례 청원했다. 부부는 “체제 전복 모의를 결코 한 적이 없다”며 영국과 이란에서 동반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과 이란의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영국 정부는 리처드에게 “협상이 진행 중이니 잠자코 있어 달라”고 했다. 리처드는 외교 문서 등을 찾아보면서 부인이 이란에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린 원인을 찾게 됐다.

문제는 영국이 이란에 갚지 않은 4억 파운드(약 6200억 원)였다. 1979년 이란 팔레비 국왕 정권은 무기 거래 목적으로 영국 은행에 4억 파운드를 넣어두고 있었다. 왕정 붕괴 후 이란 정부는 영국에 그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영국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며 돌려주지 않자 나자닌을 인질로 잡았다. 국가 간 빚 문제가 한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나자닌은 5년간 복역 후 지난해 출소했지만 곧 다시 감옥에 갇혔다.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이란이 과거 시위 참여 전력을 이유로 그를 추가 기소해 1년형을 선고한 것이다. 리처드는 다시 영국 외교부 청사 앞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나자닌 송환을 요구하는 국내외 여론이 거세지자 최근 영국 정부는 이란에 ‘인도주의적 사용’을 조건으로 4억 파운드를 갚았다. 제러미 헌트 전 외교장관은 “리처드가 아니었다면 나자닌은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자닌은 17일 영국 옥스퍼드셔 공항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어느덧 일곱 살이 된 딸은 엄마에게 보여줄 장난감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다. 리처드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우리는 미래를 살 것”이라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란 인질#감옥서 6년#아내#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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