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때보다 심해”…美 자산시장 버블, 커지는 경고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4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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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지역의 방 4개짜리 주택은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425만 달러(약 50억 원)에 팔렸다. 원래 275만 달러에 매물로 나왔는데 매도인이 제시한 것보다 150만 달러 높은 값에 거래됐다. 집주인이 주택을 시장에 내놓자마자 집을 사려는 사람들 사이에 ‘입찰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열흘 만에 계약이 성사됐다. 이 집 중개인은 CBS방송에 “지금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은 상황이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고 말했다.

공급망 위기와 구인난, 인플레이션 등으로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자산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 매도자 ‘절대 우위’ 시장으로 재편돼 집값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매수 경쟁이 치열해 집주인이 처음 부른 값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증권시장에서는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의 ‘돈 풀기’로 유동성이 풍부해진 데다, 신산업 발달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새 기업이 나타날 때마다 자금을 쓸어가다시피 하고 있다.

자산 가격이 급격하게 뛰면서 시장에서는 버블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그린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 사이언애셋 창업자는 최근 트윗을 통해 “1920년대보다 투기가 더 많고, 1990년대보다 주가가 과대평가돼 있다”고 했다. 현재 주식시장이 1929년 경제 대공황 직전이나 1990년대 말 닷컴버블 당시보다 거품이 더 많이 끼어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버블 논란에 빠진 미국의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이 갑작스러운 조정을 겪게 되면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가격이 오르다 못해 매물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전미부동산협회(NAR)의 11일(현지 시간) 발표에 따르면 최근 주택이 시장에 새로 나온 뒤부터 팔리기까지 걸린 기간은 1주일에 불과했다. 관련 지표를 집계한 1989년 이후 가장 짧은 기간이다. 신규 매물은 대개 짧아도 3주, 길게는 10주 이상 머물렀다가 팔렸다. 특히 주택 매도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먼저 제시한 가격의 100%를 매수자에게서 받았고, 35%는 그보다 높은 값에 집을 팔았다. 보통은 집을 파는 사람이 제시한 가격이나 그보다 다소 낮은 가격에 계약이 이뤄지지만 주택 수급이 무너진 상태이다 보니 그동안 보지 못한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을 사려는 쪽은 그 어느 때보다 ‘절대 을(乙)’의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돈을 충분히 마련했다고 해서 반드시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택담보대출 서비스업체 ‘로켓 모기지’는 11일 ‘주택 입찰에서 승리하는 법’이라는 글을 통해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라 △집주인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라 △전액 현금 지불을 약속하라 등 매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팁’을 제시하기 까지 했다.

자본시장에도 투자금이 물밀 듯 쏟아지고 있다. 금융 리서치업체 르네상스캐피탈에 따르면 미국에서 올 들어 13일까지 기업공개(IPO) 건수는 380건으로 작년 전체 규모(221건)를 이미 넘어섰다. IPO 규모(수익금)도 올해 1361억 달러로 닷컴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의 기록(970억 달러)을 돌파했다. 최근에도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 공유오피스 위워크 등 ‘대어’는 물론, 전통 식품업체와 바비큐 그릴 제조업체 등 그동안 자본시장에 거리를 둬왔던 기업들도 증시에 입성했다. IPO 건수와 규모가 많다는 건 그만큼 새로운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많고 증시에 자금이 몰린다는 의미다. 지난주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던 뉴욕 증시 주요 지수도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가 싶더니 12일 다시 반등세로 돌아섰다.

자산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실적이 거의 없는 회사에도 투자자들이 모여든다. 10일 나스닥에 상장한 전기차 업체 리비안은 지금까지 차량 생산 대수가 156대에 불과해, 매출은 거의 없는 반면 분기 손실액은 10억 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리비안은 증시 데뷔 이후 12일까지 사흘 연속 급등세를 이어간 끝에 시가총액이 1100억 달러(약 130조 원)로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를 추월했다. 성장 잠재력이 커 ‘제2의 테슬라’로 주목받은 측면이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가 없는데 기대감이 너무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리비안은 월가의 투자 열기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일 뿐 시장 전반에 거품이 쌓이고 있다는 경고도 쏟아진다. CNN비즈니스가 주가 추세선, 공포지수, 정크본드 수요 등 7개 시장 지표를 통해 산출하는 ‘공포 탐욕 지수’는 13일 현재 100점 만점 중 83점으로 ‘극심한 탐욕’을 가리키고 있다. 이 지표는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감정인 공포와 탐욕을 양 끝에 놓고 있는데 0에 가까울수록 투자자는 공포를 느껴 모험을 꺼리게 되고, 100에 가까울수록 탐욕에 의해 과감한 투자를 하게 된다는 의미다. CNN은 최근 보도에서 “월가에는 공포심이 없다. 오직 탐욕만 있다”며 “요즘 월가 분위기는 하나의 말로 묘사될 수 있다. 그것은 도취감”이라며 경고했다.

이 같은 자산 버블 우려가 중앙은행의 실기(失機)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초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를 공식 발표하면서도 “금리인상 신호는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사실상 테이퍼링이 마무리되는 내년 중반까지는 인플레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의사가 없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다보니 6%를 훌쩍 넘는 물가상승률에도 연준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리사 샬렛 자산관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 기준금리와 소비자물가상승률의 차이가 60년 통계 역사상 최대로 벌어졌다”면서 “연준의 정책이 경제 펀더멘탈과 단절돼 있는 것이 우려된다. 시장 버블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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