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위기’ 바이든, 아프간 철군 정당화하며 방어 안간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일 13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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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며 이제는 중국, 러시아 등 미국이 직면한 21세기의 위협에 대처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프간 전쟁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어야 할 전쟁”이라며 철군의 불가피성을 길게 해명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벗어던지고 국익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외교안보 위협 대응에 집중하겠다는 외교정책 방향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대국민연설에서 “세상이 바뀌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 중이고, 러시아의 도전을 다루고 있으며 사이버 공격과 핵 확산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또 다른 10년을 아프간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중국과 러시아만큼 좋아할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2021년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맞설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아프간 전쟁이 ‘실패한 전쟁’이라는 국내외의 비판 속에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자신의 철군 결정을 정당화하며 방어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중동이 아닌 중국이라는 미국의 최대 위협에 집중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지난 20년 간의 외교정책 페이지를 넘길 때”라고 했다. ‘핵 확산’을 언급한 부분은 중국과 북한 등의 핵 위협이 커지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국익’을 수차례 반복 사용하며 국익에 맞지 않는 전쟁을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더 이상 우리 국민의 국익에 맞지 않는 전쟁을 지속하기를 거부한다”며 “미국 본토와 친구에 대한 공격을 막는 것 외에 아프간에는 중요한 이익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철군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과 참사는 물론 아프간 내에 남아있는 미국인과 현지 조력자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전쟁을 끝낼 때 이런 정도의 복잡함과 도전, 위협 없이 빠져나올 수는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 “8월 31일 시한은 임의로 설정한 게 아니었다.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설정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협정을 재차 언급하는 등 철군 결정의 배경을 길게 해명했다. 또 아프간 현지에 있던 미국인의 90% 이상이 빠져나왔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놀라운 성공’이라고 자찬했다. 아프간 전쟁에 대해서도 “우리는 10년 전에 아프간에서 설정했던 목표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13명의 미군을 희생시킨 자폭테러의 주범 이슬람국가(IS)의 지부 IS-K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직 당신들과 안 끝났다”며 “용서하지 않는 강한 정밀타격으로 당신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을 노리는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도 “미국은 잊지 않으며, 용서하지 않으며,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며 카메라를 노려봤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연설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론과 정치권은 싸늘하다. 공화당 밴 새스 상원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철수를 “바이든 대통령의 비겁함과 무능함이 야기한 국가적 치욕”이라며 “역사는 이 비겁함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내 탓이오’(mea culpa)라고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마지막 철군 과정을 정당화하려 애썼다”며 “백악관은 철군 결정에 대해 유권자의 대다수가 (내년 중간선거 등에서) 그에게 보답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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