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유명 가수 사예드 “검문소 다섯 곳 거쳐 탈출 ‘기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6일 0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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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년간 탈레반에 반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그래서 나를 잡으러 공항 터미널 안으로 들어오면 어쩌나 두려왔다.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온 건 기적이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탈출한 이 나라 유명 가수 아리아나 사예드(36)는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약혼자와 함께 아프간 수도 카불을 빠져나온 소감을 밝혔다. 사예드는 혼돈에 빠진 카불 국제공항에서 한 여성이 자신에게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호소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아이 엄마는 내게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며 “아이를 엄마와 떼어 놓을 순 없었다”고 했다. 군인들은 그에게 ‘당신 아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내 아이는 아니지만 엄마와 아이를 공항 안으로 좀 들여보내 줄 수 없냐, 아이가 곧 죽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군인들은 거부했다.

15일 사예드는 공항 주변에 있다가는 탈레반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까 두려워 카불의 친척집으로 몸을 피했다. 다음날 그는 탈레반이 민가를 뒤진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이르기까지 검문소 다섯 곳을 거쳐야 했다. 사예드는 그간 아프간에서 터키와 영국을 오가며 살았다. 최근 몇 달간은 의류사업을 하기 위해 카불에 머물고 있었다. 사예드는 14일 탈레반이 수도(카불)로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은 뒤 약혼자와 함께 15일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했지만 공항은 총성이 오가는 아수라장이었고 비행기는 뜨지 않았다고 했다.

공항에 먼저 도착한 그의 약혼자를 알아본 아프간 현지인들이 공항을 지킨 미군들에게 ”이사람은 아프간에서 정말 유명한 가수의 약혼자다. 들여보내 줘야한다. 탈레반이 보면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약혼자는 공항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다. 영국 시민권자인 사예드 역시 약혼자의 사촌과 함께 공항에 도착해 약혼자와 상봉했다.

사예드는 ”나는 아프간 여성들의 기본권을 요구한다“며 ”아프간에서는 20년간 많은 여성들이 학교도 가고 교육도 받아 선생님도 되고 의사도 되고 많은 성취를 이뤘다. 어떻게 이렇게 모두 끝나버릴 수 있나“라고 했다.

카타르를 거쳐 미국으로 탈출한 사예드는 현재 약혼자와 함께 로스엔젤레스에 머물고 있다. 그는 아프간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관련해 ”정말 절망적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임보미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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