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 쿠오모 뉴욕주지사, 결국 사퇴… 바이든 “결정 존중”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1일 14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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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며 탄핵 위기에 몰렸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64)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면서 변명으로 일관된 사임의 변(辯)을 밝혔다. 대를 이어 탄탄대로의 정치 인생을 걷던 그의 앞길에는 성추행 혐의자 신분으로 형사 처벌을 받는 일만 남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쿠오모 주지사는 10일 TV연설을 통해 “나는 뉴욕을 사랑한다. 그리고 뉴욕에 어떤 식으로든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내가 물러나 행정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그가 뉴욕주의 전·현직 보좌관 등 최소 11명의 여성들을 강제로 만지거나 성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뉴욕주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 1주일 만에 이뤄졌다. 수사팀은 지난 5개월 동안 179명의 증인과 참고인을 조사한 끝에 쿠오모에 제기된 모든 성추행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 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연방의회 지도부, 뉴욕주 의회가 모두 쿠오모의 사퇴를 요구해 왔다.

쿠오모는 이날 20분간의 연설 내내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는 식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나는 투사다. 나의 본능은 이 논란을 싸워나가라고 말한다. 이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는 불공정하고 사실과도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키스나 포옹 등 행위에 대해 “친밀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들에게 불쾌감을 들게 했다”, “난 누구에 대해서도 선을 넘은 적이 없다”면서 자신의 의도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자신을 향한 수사나 탄핵 움직임에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훗날 정치적 재기를 모색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그에게는 이미 정치적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는 해석이 많다.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의 후광 아래 정계 입문의 토대를 닦았던 그는 뉴욕주 정책보좌관, 연방정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뉴욕주 검찰총장 등을 거쳐 2011년 주지사에 당선돼 내리 3선을 했다. 작년 초에는 팬데믹에 비틀거리던 뉴욕을 강한 리더십과 치밀한 대응으로 이끌면서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까지 올랐고 바이든 대통령 당선 뒤에는 초대 법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불거진 성추행 의혹이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확인되면서 그의 정치적 우군이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마저 등을 돌렸다. CNN 방송은 “많은 동지들이 그를 떠났고 의회는 탄핵 절차를 추진 중이었다”며 “주지사직 사퇴가 쿠오모의 유일한 옵션이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성추행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전 보좌관 린지 보일런은 이날 트위터에 “처음부터 나는 주지사에게 그의 모욕적인 행위를 멈추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고 피해자들을 끝까지 공격하고 욕하기만 했다”고 적었다.

쿠오모는 2주 뒤에 주지사직에서 정식으로 물러난다. 남은 임기는 내년 말까지로 2015년부터 부지사를 맡아 온 캐시 호컬(63)이 승계한다. 233년 주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주지사 자리에 오르게 된 그는 이날 트위터에 “57대 주지사로서 뉴욕주를 이끌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쿠오모의 사퇴를 촉구해 왔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주지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주지사로서 그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는 “그가 투표권에서 인프라까지 모든 면에서 상당한 일을 해냈다. 그래서 매우 슬프다”고 했다. 이 발언이 쿠오모를 편들기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트위터에 “대통령은 인프라에 대한 업무 등 특정 질문에 대답했다. 그는 쿠오모가 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이 일을 폭로한 여성들에도 지지를 밝혔다”고 진화에 나섰다.

뉴욕주에서는 그동안 주지사, 검찰총장, 하원의원 등 선출직 고위직들이 성추문으로 낙마한 경우가 유난히 많았다. 2008년 3월 엘리엇 스피처 당시 주지사는 고급 매춘서비스의 단골 고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자진 사퇴했다. 그의 자리를 데이비드 패터슨 부지사가 이어받았으며 다음 선거에서 쿠오모가 당선됐다. 2017년 앤서니 위너 연방 하원의원(뉴욕)은 15세 소녀와 음란한 문자 등을 주고받은 ‘섹스팅’ 혐의로 약 2년 간의 실형을 받았다. 뉴욕주 검찰총장이던 에릭 슈나이더먼은 2018년 4명의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 불명예 퇴진했다. 슈나이더먼은 쿠오모처럼 평소 여성 인권의 신장을 적극 옹호해 온 인물이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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