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예수’ 군종신부 에밀 카폰 유해 70여년 만에 확인

김예윤 기자 입력 2021-03-07 16:26수정 2021-03-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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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헌신해 ‘한국전 예수’로 불렸지만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미국인 군종 신부 에밀 카폰(1916~1951)의 유해가 70여년 만에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5일(현지 시간) 치아 기록, DNA 대조 등을 통해 카폰 신부의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의 시신은 약 700명의 신원불명 6·25 전쟁 전사자들이 묻혀있던 하와이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매장돼 있었다. 미 당국은 2019년부터 이들의 신원 확인을 시작했다.

1916년 체코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난 카폰 신부는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복무했고 1950년 한국에 파견됐다. 그는 지프차에 담요를 덮어 만든 임시 제단에서 미사를 올리고 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키는 등 군종 신부 이상의 역할을 했다.

같은 해 11월 그의 부대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중공군에 포위됐다.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는 포로로 잡힐 것을 감수하고 부상자들과 남았다. 포탄이 오가는 적진에서 부상병들을 보살피고 병사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임종 기도를 올렸다. 당시 전투에서 살아남은 허버트 밀러 씨는 “그가 부상병인 나를 쏘려는 중공군의 총구를 옆으로 밀치고 나를 들쳐업었다”며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카폰 신부의 덕이라고 회고했다. 신부가 적군인 중공군 부상자 역시 도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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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로 붙잡힌 카폰 신부는 평안북도 벽동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굶주린 병사들을 위해 중공군 창고에서 음식을 훔쳐 나눠줬다. 수용소 직원에게 부탁해 자신의 시계를 담요로 바꾼 후 그 담요를 잘라 동료들에게 양말을 만들어줬다. 열악한 수용소 환경으로 폐렴에 걸렸고 1951년 5월 숨졌다. 당시 “나를 위해 울지 않아도 된다. 항상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는 것이며 도착하면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밀러씨 같은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으로 1954년 그의 희생을 담은 책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가 발간됐다. 한국에서는 1956년 당시 신학생이던 정진석 추기경(90)이 번역판을 출간했다.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카폰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첫 단계인 ‘하느님의 종’으로 임명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역시 최고 무공훈장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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