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협력? 입에 담지도 마” 바이든 정부 장관 청문회 금기어[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6일 15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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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청문회 장관들의 하소연 “중국을 어찌할꼬”
‘차이나 리트머스 테스트’ 전전긍긍

미국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내각을 구성할 장관들이 속속 지명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든 미국에서든 장관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영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장관이 되려면 꼭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죠. 바로 인사청문회입니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진땀나는 자리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청문회가 정책과 현안 위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사전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다는 점에는 별로 차이가 없죠. 미국 장관 후보자들도 예상질문을 뽑아보고, 사전 리허설을 합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 모습. USA투데이
미국 의회 청문회 모습. USA투데이



지금쯤 워싱턴 정가에서는 바이든 초대 내각의 장관 후보자들이 받게 될 예상질문 목록이 돌아다닙니다. 각자 분야에 따라 다양한 질문을 받겠지만 공통된 질문을 꼽으라면 중국입니다. ‘차이나 리트머스 테스트’. 후보 밑에서 청문회를 준비하는 실무자들은 중국을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순서의 문제일 뿐 중국에 대한 질문은 꼭 받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 얼마나 빈틈없는 답변을 할 수 있는지가 장관 자질 결정에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것이죠.

물론 중국이 워싱턴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수년 전 워싱턴특파원 시절 유명 싱크탱크들이 주최하는 포럼이나 컨퍼런스에 가보면 절반 정도는 중국을 주제로 다루더군요.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몇 번 참석했지만 나중에는 “중국 말고는 할 게 없나”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중국 관련 행사는 언제나 청중이 꽉꽉 들어찹니다. 싱크탱크 입장에서는 가장 실패 없는 주제인 셈이죠.

중국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습니다.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미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부상하는 중국을 보면서 ‘한계론’을 주장했습니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 즉 민주주의 부재, 법과 질서 의식 결여, 독재적 정치구조 등으로 인해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싱크탱크들은 유행처럼 ‘중국의 급성장’ ‘미국의 몰락’ 등을 얘기했지만 결론은 항상 “걱정할 것 없다”였습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미외교협회(CFR)가 주최한 중국 지도부 교체 관련 포럼. CFR 홈페이지
워싱턴 싱크탱크인 미외교협회(CFR)가 주최한 중국 지도부 교체 관련 포럼. CFR 홈페이지


중국이 미국의 코앞까지 치고 들어오는 지금이야 그런 푸근한 만족감에 빠져 있을 경황이 없습니다. 청문회를 준비하는 장관 후보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교안보를 다루는 국무·국방 장관, 미중 교역갈등에 관여하는 경제 관련 장관들 뿐만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관들도 중국 예상질문을 뽑아보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합니다.

‘청문회 코치’를 자처하는 미국 정치매체 몇 곳이 뽑은 예상질문에 따르면 교육장관은 ‘캠퍼스까지 침투한 중국 스파이망 대응책’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응용 질문(?)으로 미 초중고교에 설치된 중국어 교실인 ‘공자학원’ 존폐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변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중국 공산당 침투”를 이유로 공자학원 폐지 방침을 밝힌 바 있죠. 농무장관은 “중국의 농산물 수입 중단이 촉발한 미국 농가 파산 대책을 말해보라”는 의원들의 질문에 시달릴 것으로 보입니다. 보건장관이야 당연히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처음 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겠죠. 상무장관 청문회에서는 중국 화웨이와 틱톡에 대한 후속 제재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 확실합니다.

2018년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 인준청문회. 뒤쪽에서 폼페이오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왼쪽은 부인 수전 여사. ABC뉴스
2018년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 인준청문회. 뒤쪽에서 폼페이오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왼쪽은 부인 수전 여사. ABC뉴스


예상질문을 제시하는 매체들은 친절하게 답변도 알려주네요. 구체적인 답변은 아닐지라도 의원들의 송곳 질문을 대응하는 요령을 보자면 “‘중국’과 ‘협력’을 결코 한 문장에 넣지 마라”가 눈에 띕니다. 아무리 할 말이 궁해도 “중국과 발전적인 협력관계를 도모해 나가겠다” 같은 교과서적인 답변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죠. ‘협력(cooperation)’뿐 아니라 ‘조율(coordination)’ ‘상호의존(interdependence)’ 류의 단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단어들을 입에 올리면 “우리가 중국과 사이좋게 지낼 때인가”는 의원들의 질타를 감수해야 합니다. ‘중국과의 협력’이 아닌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동맹국들과의 협력’에 중점을 두라고 청문회 코치들은 충고합니다.

특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중국에 비교적 유화적 태도를 보였던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정책결정직에 있었던 후보자들입니다. 오바마 시절에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인 사례죠. 그는 대중(對中) 강경파로 알려졌지만 그건 오바마 기준에서나 통하는 얘기일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의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현격한 조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블링컨 후보자를 가리켜 “손님(중국)이 불편해 할까봐 온갖 신경을 써주는 주인장 같다”고 비웃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소장파인 벤 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청문회 후보자들에게 아예 ‘이런 답변을 준비하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 정책에 관여했던 지명자들은 중국이 변한 만큼 중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소상히 밝힐 준비를 하라. 이전 직책에 있을 때 어떻게 중국을 잘못 평가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해 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밝혀라. 또한 만약 지금 중국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다른 정책을 펼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도 리뷰하라.”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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