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줄줄이 확진 우려에…국내외 정책 차질 불가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일 15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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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음으로써 최소 2주 간 그의 모든 대선유세와 국정업무가 사실상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불과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미국 대선 판세가 크게 요동치는 것은 물론 그의 건강 상태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가도 ‘시계 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 판정으로 미국 대선은 시계 제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우선 이달 15일로 예정된 제2차 대선후보 TV토론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2일부터 14일이 지난 시점은 16일로, TV토론이 열리는 15일은 아직 자가격리가 끝나지 않은 시점이 된다.

그는 현재 전국 단위 지지율은 물론 주요 경합주의 지지율도 경쟁자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밀리고 있는 상태. 초조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대규모 청중을 동원하는 오프라인 유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대선 코앞 시점까지 유세는 물론 지금까지 사실상의 유세 무대로 삼아왔던 각종 브리핑과 행사에도 나설 수 없게 됐다. 이미 전국적으로 우편투표가 시작된 시점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자가격리로 발이 묶이는 상황은 초대형 악재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 직전인 1일 뉴저지주를 방문해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진행했다. 2일에는 워싱턴 시내 호텔에서 선거자금 모금자들을 만나고 플로리다주 샌퍼드의 유세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추가 확진자 나올라...백악관도 정지상태
백악관은 비상이 걸렸다. 백악관 고위참모들 중에 줄줄이 추가 양성 판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수시로 대면 회의와 보고를 해온 최고위 참모들도 당장 검사와 함께 2주 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 경우 미국 행정부의 핵심 ‘브레인’들의 업무 마비가 불가피하다. 백악관은 고위 참모진의 자가격리 여부와 범위 등에 대한 언론의 질의에 현재까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 고위인사들은 5월 백악관 직원 중에서 첫 확진 사례가 나온 이후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73세 고령인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가 악화돼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질 상황에 대한 대비 필요성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경우 펜스 부통령이 대행을 맡게 된다. 최고지도자의 공백은 인종주의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타격, 폭력시위 등으로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불안정성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방역, 미중경쟁 올스톱?
트럼프 대통령의 양성 판정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미국의 경제활동 재개도 다시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백악관이 신속한 진단 결과 확인을 비롯해 사실상 제한 없는 (코로나 방역) 자원을 공급받고 있음에도 대통령을 코로나19로부터 지키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활동 및 등교 재개시 근로자와 학생들, 대중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행정부가 혼란 상태에 빠져들게 되면 대북, 대중 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미 정상회담 같은 대규모 이벤트인 ‘10월의 서프라이즈’도 물 건너가는 상황이 된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회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북미 관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딛고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대선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조기 대화 재개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마스크와 방역 무시하다 끝내 확진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트위터를 올려 “오늘밤 영부인과 나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며 “우리는 즉시 자가격리와 회복을 위한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함께 이겨내겠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주치의 션 콘리(Sean P. Conley)는 “대통령 부부은 현재 양호한 상태”라며 “대통령은 회복 과정에서 중단 없이 그의 임무 수행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현재 어떤 증세가 나타났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백악관 인사들에 따르면 1일 트럼프 대통령의 목소리가 갈라졌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앞서 전날 저녁 호프 힉스 백악관 보좌관이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 이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간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힉스 보좌관은 최근 에어포스원을 타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유세에 동행하며 잦은 접촉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개월 간 코로나19의 위험성을 폄하해 왔으며, 1일 저녁 행사 만찬에서는 “팬데믹의 끝이 보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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