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앞에서 집단성폭행 당해도 내 잘못이라고?

뉴시스 입력 2020-09-20 10:13수정 2020-09-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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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여성들이 변했다…전국서 사법 개혁 요구 시위
성폭행 피해 책임 피해자에 돌리는 경찰 발언에 분노
"수십년 고착된 가부장적 악습 뿌리뽑자" 목소리 거세
파키스탄 여성들이 변했다. 빈번한 성폭행으로 악명높은 파키스탄 여성들을 바꾼 변화는 최근 2명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집단 성폭행당한 여성에게 성폭행 피해의 책임을 돌리는 경찰 수뇌부의 발언에 대한 분노로 인해 촉발됐다.

19일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경찰의 2차 가해를 비난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위는 애초 집단 성폭행 발생의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돌린 경찰 발언으로 시작됐지만 점차 파키스탄의 경찰 및 사법 개혁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요구로 확대되고 있다. 수십년 동안 파키스탄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가부장적 악습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 9일 새벽 파키스탄 동부 라호르의 고속도로에서 두 자녀와 함께 운전하던 한 여성이 자동차 연료가 떨어졌다.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고 차 안에서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30대의 두 남성이 먼저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들은 돈과 귀중품을 강탈한 후 여성을 끌어내 인근 들판에서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하고 도주했다.

사건 이튿날 라호르의 우메르 세이크 경찰국장은 피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에 어린 두 자녀만 데리고 여성 혼자 운전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왜 많은 차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한적한 길을 선택했는지, 출발 전에 연료가 충분한지 왜 점검하지 않았느냐며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프랑스 영주권을 가진 피해 여성이 파키스탄도 프랑스처럼 안전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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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발언에 대해 파키스탄 국민들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반응했다. 파키스탄 여성들은 밤늦은 시각에 밖에 나가면 안 되며 안전을 위해 남성과 동행해야 한다는 충고를 받으며 살아왔다.과거에는 이런 발언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피해 여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소셜 미디어에는 경찰이 피해 여성을 괴롭힌다는 비난이 폭주했다.

여권운동가 모네자 아흐메드는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의 행동을 기준으로 여성이 피해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악습이 수십년 동안 파키스탄 사회에 뿌리내려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반발은 파키스탄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우리 사회가 이를 듣고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뿐만도 아니다. 시린 마자리 인권장관은 “아이들과 함께 밤에 외출한 것을 문제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이런 문제는 해결돼야만 한다. 어떤 것도 성폭행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도 세이크 국장의 발언을 비난했다.

분노가 거세지자 파키스탄 정부는 세이크 국장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파와드 초드리 연방장관은 이번 주 국회에서 “매년 평균 5000건의 성폭행 사건이 신고되고 있으며 이중 5%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고되지 않는 성폭행 사건이 훨씬 많아 처벌받는 실제 비율은 이보다 훨씬 더 낮다고 인권단체는 말한다.

지난 2002년 파키스탄 한 마을에서 일어난 무크타르 마이 집단 성폭행 사건은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됐었다. 그녀는 마을 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마을 주민들에게 집단 성폭행당한 후 범인들을 상대로 법정 투쟁에 나섰지만 9년에 걸친 오랜 재판 끝에 6명의 범인 중 5명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세이크 국장의 발언에 대한 지금 파키스탄 여성들의 반발은 무크타르 마이 사건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파키스탄에서는 여성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사회적 규범에 도전, 소셜미디어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여권운동가들이 부상했다.국제법률위원회 남아시아 프로그램의 법률 고문인 리마 오메르는 “파키스탄은 소셜미디어에 자신을 표현하고 주류 미디어에 진출하는 여성들을 갖게 됐고 이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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