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화약고 된 홍콩…무엇이 젊은이들 거리로 내몰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9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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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나는 항구(香港)’란 뜻의 홍콩에 최루탄 냄새가 가득하다. 28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미국과 중국이 사실상의 신(新)냉전에 돌입한 가운데 유혈사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규모 반중 시위도 잇따라 열린다. 홍콩 시위대는 다음달 4일과 9일 각각 톈안먼 사태 31주년과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 1주년을 맞아 집회를 예고했다. 중국도 인민해방군 등을 투입해 강경 진압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홍콩 당국의 송환법 입법 예고로 시작돼 1년 3개월 넘게 이어진 반중 시위의 이면에는 1997년 반환 후 누적됐던 각종 사회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집값, 치솟는 생활비, 중국 본토인과의 취업 경쟁 등 불평등 문제가 특히 젊은이들을 시위로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빈부격차 세계 최고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홍콩 상위 50대 부호의 자산은 총 3080억 달러(약 382조 원)로 홍콩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한달 4000 홍콩달러(약 64만 원) 미만을 버는 빈곤층은 인구 740만 명의 18.2%인 135만 명에 이른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대표적 양극화 지표인 지니계수로도 확인할 수 있다. 홍콩 통계청이 5년마다 발표하는 이 수치는 1976년 0.429였지만 반환 직전인 1996년 0.518를 기록해 처음 0.5를 돌파했다. 이후 내내 상승 곡선을 그려 2016년 45년 만의 최고치인 0.539로 치솟았다.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매우 불평등한 사회, 0.5를 넘으면 언제든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로 분류된다. 0.5를 넘는 국가는 아프리카 잠비아, 중남미 온두라스 등 주로 최빈국이다. 1인당 평균 소득이 4만8000달러(약 6000만 원)인 홍콩의 지니계수가 24년째 0.5를 넘는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주 원인은 천문학적 집값이다. 부동산 서비스기업 CBRE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의 평균 집값은 123만5220달러(약 14억 원)을 기록했다. 일반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1년을 모아야 한국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홍콩 아파트의 평균 임대료는 미국 최대도시 뉴욕보다도 27% 비싸다. 미 컨설팅기업 데모그라피아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은 10년 연속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도 최저 임금은 시간당 4.82달러(6025원)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2004~2018년까지 홍콩의 명목 임금은 63% 올랐지만 월세는 177 상승했다. 특히 40m² 이하 소형 아파트 가격은 무려 420% 뛰었다. 낮은 소득과 저조한 임금상승률이 치솟는 부동산 관련 비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 돈이 없는 극빈층은 ‘관(棺)’ 혹은 ‘새장’으로 불리는 1㎡ 크기 철제 소형 주거지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곳곳의 맥도날드 가게에서 음식을 시키지 않고 잠을 자는 소위 ‘맥난민’도 수두룩하다.

●저임금 구조의 고착화+부실한 복지 체계

유례없는 빈부격차는 홍콩의 근현대사와 관련이 있다. 19세기 초 홍콩은 인구 약 6000명의 작은 어촌이었다.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이 1842년 홍콩을 영국에 할양했고 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인구가 25만 명으로 늘었다. 이 때 역시 대다수가 서민층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등장하자 본토의 부유층이 홍콩으로 대피했다. 1960년대에는 문화대혁명을 피해 저임금 노동자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식당이나 건설현장에서 홍콩인보다 싼값을 받고 일하며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1997년 반환 후에는 중국 대자본과 노동자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현 인구 740만 명 중 13%가 본토인이며 지금도 하루에 평균 150명의 중국인이 홍콩으로 이주하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본토에서 두 번이나 저임금 노동자가 대규모로 이주해오면서 홍콩의 저숙련 노동자 상당수가 실직했다. 자리를 지킨 사람은 기존보다 더 낮은 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불평등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성장 과실이 소수 부유층에 쏠린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영국 통치 시절부터 홍콩은 소득세와 법인세가 매우 낮고 양도소득세, 상속세 등은 아예 없었다. 세계 각국의 부자와 기업을 끌어들여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연간 과세소득이 200만 홍콩달러 이하인 기업은 불과 8.25%의 법인세를 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21.5%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로 인한 세수(稅收) 부족 등으로 사회복지 정책은 상당히 뒤떨어져있다. 영국 구호기구 옥스팜이 발표한 홍콩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홍콩 정부의 공공지출에서 사회복지와 보건지출 비중은 각각 14.8%, 14.3%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한국(28.0%, 19.2%), 일본 (37.2%, 24.2%), 호주(32.3%, 16.3%) 등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세계 최하 수준이라고 옥스팜은 지적했다.

●“홍콩은 본토의 약국이 아니다”

중국인과 중국 자본이 홍콩 경제를 급속도로 잠식하고 있다는 점 역시 홍콩인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1997년 홍콩 증시의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중국 기업의 비중이 20% 미만이었지만 현재 60%를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증시 상위 10대 기업 중 텐센트, 건설은행, 핑안보험 등 6개가 중국 기업이다. 반환 직전인 1996년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1597억 달러로 중국(8637억 달러)의 18.5% 수준이었다. 2018년 이 비중은 2.4%로 급감했다.

급증한 중국 본토 출신 관광객은 홍콩 상권도 뒤흔들었다. 본토인들의 대규모 투자로 부동산값과 임대료가 급상승한 와중에 2000년대 들어 홍콩의 오래된 상점들이 약국과 금은방으로 업종을 바꾸는 현상 또한 뚜렷하다. 본토인들이 가짜가 판치는 중국 대신 믿을 수 있는 홍콩에서 의약품과 보석류를 싹쓸이하자 이 고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것이다. 일부 상점은 내놓고 홍콩인보다 본토인을 우대한다. 한 때 본토인의 홍콩 출산까지 급증해 분만실 부족 현상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2004년 가짜 분유,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을 겪은 중국 소비자들은 홍콩 분유도 대거 사들였다. 분유 파동으로 홍콩 내 분유가 동나는 상황 등이 발생하자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졌다. 홍콩 당국이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반중파 의원의 자격을 박탈하거나 일부 홍콩 영토에서 본토 법을 적용하는 일도 발생했다. 장정아 인천대 교수(중국학)는 “지속적으로 쌓여온 여러 방면의 갈등이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2014년 우산혁명, 지난해 송환법 반대, 지금의 국가보안법 반대 등으로 이어지며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세대 갈등도 심각

부(富), 나이, 홍콩 유입 시점 등에 따라 홍콩의 앞날과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각양각색으로 다르다는 점도 홍콩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산혁명 이후 반중 시위를 주도해 온 민주화 세력은 주로 고학력 젊은 층이다. 반면 저소득 저학력층은 중국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시위가 격화될수록 생계에 지장을 받는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경찰과의 물리적 대치를 주도한 대학생들은 “중국의 탄압에 맞서려면 과격 시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성세대는 대부분 이를 반대한다.

또한 기성세대는 영국이란 든든한 우산 하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용’으로 불리며 고도성장을 구가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중국이라는 패권국의 위상을 무시할 수 없다며 “중국을 거부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고 본다. 1년 넘게 이어진 반중 시위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소상공인의 생계가 특히 타격받고 있다는 점도 무관하지 않다.

반면 고학력 젊은층은 본토인이 자신의 일자리를 다 빼앗는다고 느낀다. 월급이 많은 금융, 정보기술(IT) 등 소수의 화이트칼라 직업을 가지려면 본토인과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삶에서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을 빼놓을 수 없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에게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금지한 중국의 조치는 엄청난 공포와 반발을 안긴다.

1997년 반환 전후로 태어난 소위 ‘반환둥이’들이 특히 이런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규정한다. 지난해 6월 홍콩대 조사에서 18~29세 시민 75%가 “나는 홍콩인”이라고 답했다. 10대 시절 ‘학민사조’란 학생단체를 조직해 우산혁명을 주도했고 지금도 반중 시위의 선봉에 선 조슈아 웡(24), 아그네스 차우(24), 네이선 로(27) 등은 중국의 위상과 힘이 아무리 커져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홍콩의 기본 이념이 훼손돼선 안 된다고 여긴다. 웡이 “나도 중국이 두렵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뺏긴 홍콩에 사는 건 더 두렵다”고 외치는 이유다.

●신냉전 최전선

이 와중에 미국과 중국은 홍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 등을 둘러싸고 사실상 신(新)냉전을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한 홍콩의 정정 불안도 극대화했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과정에서 2600명 이상이 다치고 8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올해는 미중 갈등이 심각해 중국이 미국에 본때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라도 더 거칠고 강경한 진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올해 반중 시위의 1차 분수령은 다음달 4일 톈안먼사태 31주년 기념 시위가 될 전망이다. 강 센터장은 “지난해 송환법 시위에 740만 인구 중 최고 200만 명이 몰려나온 만큼, 올해 시위에서도 2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이면 국제사회와 중국에 시위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9월에는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하는 입법위원회 선거도 치러진다. 지난해 구의원 선거에서 반중파(민주파)가 선전한 만큼 올해 선거에서도 반중파가 다수를 차지하면 반중 시위가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984년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반환을 주저하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게 “나를 믿어라. 50년의 자치를 보장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반환 협정을 체결했다. ‘한 국가 두 체제’를 뜻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 3원칙을 지키겠다는 의미였다. 중국은 “반환 20년 후인 200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시하겠다”고도 했다.

중국은 이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갈수록 통제와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친중파 의원이 대다수인 홍콩 입법회(의회)는 2003년 일찌감치 현재의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 했다. 이 때도 중국이 배후에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은 2011년 공산당에 맹목적 충성을 강조하고 텐안먼 사태를 다루지 않는 ‘국민교육’을 홍콩 교과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 했다. 2014년에는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 약속도 철회했다.

프랑스 일간지 라크루아는 “중국이 홍콩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처럼 현대사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홍콩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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