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세상에 200년 뒤처진 가톨릭…부정과 조롱의 대상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3일 21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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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보수성향 관료들에게 ‘변화’ 촉구
“완고함에 갇혀 보편적 善에서 멀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2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바오로6세 홀에서 어린이들로부터 선물 받은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끄고 있다. 교황은 17일 83번째 생일을 맞았다. 바티칸=AP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2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바오로6세 홀에서 어린이들로부터 선물 받은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끄고 있다. 교황은 17일 83번째 생일을 맞았다. 바티칸=AP 뉴시스
“가톨릭은 변화에 대한 태생적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몰이해와 증오의 지뢰밭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의 가톨릭은 세상에 200년쯤 뒤처졌다’고 한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전 밀라노 교구 추기경(1927~2012)의 충고를 되새겨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 시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바티칸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메시지를 통해 “가톨릭이 사람들의 삶과 무관해진 세상이 됐음에도 가톨릭은 완고함에 갇혀 보편적 선(善)으로부터 괴리되고 있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이날 메시지는 10월 남미 아마존 교구 주교회의의 ‘기혼 남성 사제와 여성 부사제 서품 요청’에 긍정적으로 대응하는 등 진보적인 행보를 펼쳐 온 교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온 보수적 성향의 바티칸 관료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날 사도궁 클레멘티나 경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연례회의에서 “한때 세상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갖고 있던 가톨릭이 이제는 그런 존재감을 잃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지금의 가톨릭은 문화 또는 사회적 가치관의 선도적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부정당하거나 조롱당하기 쉬운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전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라며 “가톨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가톨릭 신도들이 원하는 변화를 성직자들이 시급히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이 설교 중 언급한 마르티니 전 추기경은 대표적인 진보적 성향의 성직자로 “교황과 대주교부터 급진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이날 교황은 추기경단 단장 임기를 ‘종신’에서 ‘중임 가능 5년’으로 제한하는 칙령을 선포해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추진 중인 교황청 직제 개편의 시작을 알렸다. 사임한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단 단장은 ‘가톨릭 성직자들의 어린이 성추행 의혹에 침묵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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