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선수 공 잡으면 원숭이 소리 내며 야유… 축구관중 인종차별 몸살 앓는 유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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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들이 갈수록 심해지는 ‘축구장 인종차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럽의 극우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가 득세하면서 강화된 이민자 혐오, 경제난으로 인한 빈부 격차 심화가 맞물린 현상이란 분석이 나온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프로리그 세리에A 명문구단인 AS로마는 27일 한 축구팬에게 안방 경기장인 ‘올림피코 스타디움 평생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해당 팬은 수비수인 브라질 출신의 주앙 제주스 선수에게 심한 인종차별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

인터밀란, AC밀란 등 다른 이탈리아 유명 축구팀들도 경기장에서 흑인 등 유색인종 선수들이 공을 몰고 갈 때마다 원숭이 소리를 내거나 ‘깜둥이’라고 외치며 야유한다. 대응책을 고심하던 20일 AC밀란 구단은 인종차별 대책팀까지 마련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프랑스 리그앙(1부 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에서도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다. 24일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프리미어리그 소속 맨체스터 시티 선수 베르나우두 실바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흑인 동료 뱅자맹 멘디를 ‘초콜릿’에 비유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2018∼19시즌 영국 축구장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등 증오 범죄는 193건으로 전년보다 47.3% 증가했다.

리그앙에서는 4월 인종차별로 아예 경기가 중단됐다. 디종과 아미앵의 경기 중 관중들이 흑인 선수들을 조롱하기 위해 원숭이가 우는 소리를 일제히 내자 선수들이 심판에게 “경기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과거 일부 극성팬(훌리건)의 사례였던 인종차별 문제는 최근 일반 축구팬, 유소년 축구 리그에도 번져 우려를 더한다. 축구 관련 각종 온라인 게시판, 소셜미디어 등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는 인종차별과 각종 혐오 표현이 더 심각하다. 이탈리아 유소년 리그에서는 최근 2년간 80건의 인종차별 행위가 발생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극우 포퓰리즘의 확대’가 있다. 축구장을 주로 찾는 백인 노동자 계층은 양극화 심화 및 일자리 부족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계층이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불만이 스포츠 인종차별 행위로 분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종차별 응원이 특히 심한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극우정당 ‘동맹’이 1년 2개월간 집권하며 난민 입항 금지 등 강력한 반(反)난민 정책을 주도해왔다.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총 171석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인종차별 행위가 등장하면 심판이 일단 경기를 중단시키는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24일 “진실을 호도하는 인종차별적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팬들의 상당수가 유명 축구단의 열성 고객이라는 점에서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보내는 시선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유럽 축구#축구관중#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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