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창, 북핵 정보 빼내려 北대사관 습격…직원 폭행도 북핵 자료 얻기 위한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9일 22시 42분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 현지 법원 자료 및 관계자 인용 보도
“침입 지시한 배후에게 증거로 제공하기 위해 동영상도 촬영”
일각서 “홍창은 북한 용병(North Korean mercenary) 출신
…김정남 옹립해 북한 망명정부 수립 시도” 관측도

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 주범으로 지목된 에이드리언 홍 창(왼쪽),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 (오른쪽)
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 주범으로 지목된 에이드리언 홍 창(왼쪽),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 (오른쪽)
스페인 마드리드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수사 당국이 이들의 침입 목적을 ‘북한 핵무기 관련 정보 탈취’로 파악하고 있다고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가 2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특히 탈북민 구출단체인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의 핵심인물이자 이번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에이드리언 홍 창이 수 년간 북한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해 왔으며 그가 ‘북한 용병(North Korean mercenary)’ 출신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침입 목적은 북핵 자료 탈취


엘파이스는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조사 당국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5일 여 남긴 지난달 22일 이들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한 민감 정보를 찾기 위해 북한대사관을 침입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대사관을 침입해 컴퓨터와 USB 등을 탈취한 것은 북핵과 관련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였으며 소윤석 상무관 폭행 및 납치 시도 역시 같은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침입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북핵 관련 자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소윤석 상무관을 폭행했고 그의 망명을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침입자들이 소 상무관을 상대로 ‘문서와 파일 위치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으며 소 상무관이 거부하자 그를 때렸다. 또 ”북한 정권을 거부하면 스페인에서 빼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주겠다“며 소 상무관을 회유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당국은 침입자들이 스페인 대사를 지내다 추방된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가 대사관에 남기고 떠난 북핵 관련 정보들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9월 북한 핵실험 직후 스페인으로부터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된 김 대표는 귀국 후 현재 북측 비핵화 협상 실무진을 이끌고 있다.

신문은 이들이 대사관 내 컴퓨터, USB, 하드드라이브, 휴대전화 등을 탈취할 당시 초소형 카메라로 자신들의 활동을 촬영했으며, 이는 자금을 지원한 ‘누군가’에게 증거로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이 동영상은 대사관 침입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반(反)북한단체 ‘자유조선’이 최근 공개한 영상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홍 창, 북한 용병 출신?…조성길 전 대사대리 잠적과 연관성


엘파이스는 수사 상황을 잘 아는 취재원을 인용, 수사 당국이 침입자들의 리더인 홍창을 ‘북한 용병(North Korean mercenary)’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용병 출신이 왜 반북 활동에 가담하게 됐는지에 관한 설명은 제시하지 않았다.

신문은 그가 여러 개의 수상한 기업을 소유하고 있으며 각국의 여러 정보기관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스페인 수사당국도 홍창이 스페인 외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북한 관련 사건에서 주요 역할을 한 것이 아닌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홍 창이 지난해 11월 잠적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와 관계가 있는지도 조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경찰은 북한대사관 근처에서 가명으로 발급된 홍 창의 이탈리아 운전면허증도 발견했다. 이 면허증에는 밝혀지지 않은 홍창의 가명이 적혀 있었고 이탈리아 정부가 발행한 공식 면허증인지, 위조 면허증인지 여부도 파악되지 않았다.

이날 미 워싱턴포스트(WP)도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지낸 김정봉 전 국가정보원 대북실장의 말을 인용, ”자유조선의 핵심인물인 홍 창이 수년간 북한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해 왔다“고 전했다. 김 전 실장은 ”홍 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고(故) 김정남에게 수 차례 망명정부의 지도자가 돼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덧붙였다. 김정남이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된 후 자유조선이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을 보호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 작전명은 한국어 ‘놀라움’서 유래한 ‘놀란(Nollan)’

스페인 경찰은 이 용의자들이 한 북한대사관 직원 부인의 신고로 달아난 점을 감안해 자신들의 수사에 ‘놀란(Nollan) 작전’이란 한국어 이름을 붙이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어 놀라움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국은 이번 대사관 침입이 모든 세부사항까지 완벽하게 계획됐으며, 습격자들이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개된 동영상에 따르면 침입자들의 ‘극히 폭력적이고 전문적인 행동’이 뚜렷하게 관찰된다고도 덧붙였다.

신문은 ”가해자들이 유일하게 계획하지 않은 것은 여성이 창문으로 뛰쳐나올 수 있다는 사실뿐이었다“고 했다. 현지 경찰에 습격 사실을 신고한 대사관 부인 직원은 대사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