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범행은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주범으로 지목된 ‘아드리안 홍창’은 당시 가짜 이름·회사가 기재된 허위 명함을 사용, 대사관에 진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대사관 직원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그를 만나러 왔다고 해 의심을 피했다.
이들 일행은 대사관에 진입해서는 무장 강도로 돌변했다. 이들은 칼, 마체테(날이 넓은 도검 무기), 쇠창살, 그리고 모형총으로 무장해 직원들을 협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직원들을 결박, 구금하는 과정에서 몇몇 직원은 부상을 입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한 여성 직원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저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술에 따르면 10명의 침입자들은 자신을 ‘북한 해방을 위한 인권단체’ 구성원이라 소개하며 대사관 직원을 상대로 북한에 등을 돌릴 것을 설득했다.
길고 긴 대치는 5시간 동안 이어졌다. 침입자들은 이후 대사관 차량 3대를 이용해 범행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대사관에서 여러 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함해 기밀장비를 탈취한 것으로 알려진다.
스페인 법원은 이들이 네 개 집단으로 나뉘어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이 중 주범인 아드리안은 포르투갈 리스본을 거쳐 미국 뉴어크행 항공편에 탑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미국에 도착한 그는 FBI 측과 접촉해 대사관에서 훔친 시청각 자료를 공유했다고 보고서는 적시했다.
◇아드리안은 누구?…“미국 내 북한활동가”
이번 범행을 계획하고 주도한 단체가 누구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조사되지 않았다. 다만 스페인 법원이 주범으로 아드리안 홍창이란 남성을 지목하면서 그의 정체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소식통을 인용, 아드리안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북한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NK뉴스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5년부터 북한의 체제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연구소’란 기구의 수장으로 활동해왔다. 또한 북한인권 비정부기구(NGO)인 ‘LiNK’(Liberty in North Korea)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아드리안은 지난 2006년에는 LiNK 직원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 탈북자들을 탈출시키려 하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고 NK뉴스는 전했다.
애초 사건 배후로 지목됐던 북한 반(反)체제 단체인 자유조선도 이날 스페인 북한 대사관 침입사건에 가담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조선은 이날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발생한 사건은 습격이 아니며, 우리는 초청받아서 대사관에 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갈을 물거나 폭행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스페인을 존중하기 위해 우린 아무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자유조선은 최근까지 ‘천리마 민방위’라는 이름으로 탈북민들을 보호, 구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소속 인사와 조직의 규모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들은 공개 활동 개시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사망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구출해 보호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북한대사관 침입 사건은 아드리안과 자유조선 등이 함께 공모한 것일 수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이들이 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을 노렸는지, FBI에게 건넨 자료가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정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미 정부는 북한 대사관 침입 사건은 미국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스페인 법원은 10명의 용의자가 모두 미국으로 도주했다고 판단하고 미 정부에 신병 인도를 요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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