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에 접어든 프랑스 반정부 시위대 ‘노란 조끼’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들의 유럽의회 및 프랑스 의회 진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국민적 지지를 얻었던 노란시위는 3개월이 지난 현재, 동력과 방향성을 함께 상실하고 있다는 평가다.
7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노란조끼는 ‘시티즌 이니셔티브 랠리(시민 주도 집회·Citizens Initiative Rally)’라는 이름의 정당을 구성하고 5월 중순에 열릴 유럽의회 선거에 나설 10여명의 후보를 공개했다. 이들은 2월 중순까지 모두 79명의 노란 조끼를 후보로 확정할 예정이다.
노란 조끼의 한 후보자는 “우리가 언제까지고 아웃사이더로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매주 토요일 시위를 이어가기도 힘들다. 우리는 제도권 정치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가 제도권의 정당으로 변모한 것과 관련해 “지난 40년간 우리를 경멸해 온 정치엘리트들의 페이지를 넘긴 것”이라고 설명하며 “유럽의회에서 실업자들과 포크레인 운전자들이 관료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힘 빠진 노란 조끼
노란 조끼는 지난 3개월 간 시위대의 다양한 구성과 호소력으로 힘을 얻었다.
이들을 이끄는 대표적인 지도자도, 일치된 요구 사항도, 합의된 정치적 방향도 없었던 노란 조끼는 오히려 그 덕분에 정부와의 협상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12월 중순께 생방송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란 조끼가 요구했던 최저임금 인상을 전격 수용하고, 저소득 은퇴자의 사회보장세 인상 철회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노란 조끼 시위를 촉발했던 유류세 인상 폭 역시 국제유가와 연동하겠다는 양보를 받아냈다.
원하는 것을 얻어낸 이들은 왜 정치 세력화를 추구하는 걸까?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의 올리비에 코스타 선임 연구원은 현재 노란 조끼는 조직화, 혹은 소멸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타는 “노란 조끼 시위대의 수는 줄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원하는 국민투표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노란 조끼는 이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방향성을 상실한 채 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란 조끼 지도부 중 그 누구도 강력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지식, 자질, 재원을 갖고 있지 않다. 훌륭한 대화를 하지도, 명문을 쓰지도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같은 거부도 아니다. 정치적 배경도 네트워크도 없다”며 “이들은 제도권 밖에서 정치력을 행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 최후의 승자? 결국은 마크롱
유류세 인상에 반대한 화물 트럭 운전사들의 분노로 촉발됐던 노란 조끼 시위는 이후 농민, 학생, 노동자 등이 각자의 요구를 주장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한 때는 동력으로 작용했던 다양성이 지금은 노란 조끼의 정치 세력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관성 있는 정책 구성이 불가능해 진 것이다.
지난달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여론조사에 의하면 프랑스 내에서 노란 조끼의 지지율은 약 7~8% 수준.
아이러니한 것은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 연말 20%대로 급락한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극우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과 장 뤽 멜랑숑 대표의 극좌 정당 ‘프랑스 앵수미즈’의 지지율이 노란 조끼의 지지율이 상승한 만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타는 “노란 조끼가 선거에서 7% 정도의 득표율을 얻는다면, 극우·극좌 정당엔 ‘재앙’일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승자는 마크롱 대통령이 될 것이다. 중도우파인 마크롱 대통령의 과제는 극우를 확실히 넘어서는 것이다”며 노란 조끼가 출마한다면 마크롱 대통령은 쉽게 과제를 해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정치 세력화, 노란 조끼 내부 반발 이어져
프랑스 남부 도시인 툴루즈에서 노란 조끼를 이끌던 뱅자맹 코시는 “선거 후보 명단은 지도부의 힘을 강화시키는 일”이라며 선거 출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노란 조끼는 체제 밖에 존재하던 좌파, 극좌파, 우파, 극우파들이 재정적 이익과 사회 정의라는 공통된 바람으로 뭉쳤다”며 “하지만 우리는 이민 등의 문제라면 하나의 의견으로 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코시는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라면 정치적 방향성을 결정해야 한다. 이는 노란 조끼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고 했다.
노란 조끼를 이끌며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자송 에르베르는 정당에 가입하라는 요청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에르베르는 노동자 신분인 시위대가 정치에 헌신하기는 힘들며 “노란 조끼의 목표는 프랑스의 기성 정치인들을 설득해 그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마크롱 행정부, 향후 대응은?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달 15일을 기점으로 전국을 돌며 ‘대토론회’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어떤 질문도 금지된 것은 없다”던 마크롱 대통령이 사형제 부활, 낙태 금지, 난민 인정 제도 폐지 등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과 관련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토론회라고 비판이 이어졌으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코스타는 “프랑스는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이고, 국민은 행정부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노란 조끼 운동은 ‘아랍의 봄’이 아니고, 독재에 대한 비판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란 조끼 시위 초반에 국민의 80%가 이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흥미롭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 80%가 차기 대통령을 원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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