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세계 경찰 역할 이제 그만”…또 주한미군 철수 거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7일 15시 46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미국이 언제까지나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는 없다”며 사실상 미국의 개입주의 외교노선에 종언을 선언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분쟁지역의 미군 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호구(sucker)’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미국의 달라질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역설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비롯한 한미 간 동맹 이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점 찍는 트럼프의 신(新)고립주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전격 방문했다. 3시간 반 정도 머물며 장병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는 등 함께 시간을 보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동행했지만 이미 사임을 발표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함께 가지 않았다.

분쟁지역 방문을 꺼려온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2002년 이후 크리스마스에 해외 미군기지를 방문하지 않는 첫 대통령’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왔다. 25일 야간 항공편으로 예고 없이 이라크 주둔기지를 찾은 것은 이런 비판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첫 해외기지 방문이라는 의미와 시기 때문이었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에 대해 어느 때보다 많은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장병들에게 한 연설에서 “미국이 보상도 못 받으면서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을 위해 싸워줄 수는 없다”며 “미국이 계속 ‘세계의 경찰’이 될 수는 없는 만큼 싸우기를 원한다면 그 비용 또한 그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호구’가 아니며 이제 사람들도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 방문을 마치고 독일 람스타인 공군기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동행한 기자들에게 “우리(의 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에까지 전 세계에 퍼져 있는데, 이건 사실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자 나라들이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 미국을 더 이상 이용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중동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의 부자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도 했다.

이라크 방문이 만족스러웠던 듯 트럼프 대통령은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편안한 자세로 25분간 이런 이야기들을 이어갔다고 백악관 풀기자단은 전했다.

●무임승차는 안 돼도 전략기지는 유지

이날 발언은 갑작스러운 시리아 철군 발표 및 이에 반발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는 데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왔다. 그러나 평소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해온 이른바 동맹국 ‘무임승차론’의 비판 수위를 어느 때보다 끌어올렸다는 점을 외신들은 주목하고 있다. AF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에 종언을 선언하기 위해 첫 이라크 방문을 이용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이런 정책 방향은 당장 사흘 앞으로 시한이 다가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도 강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줄줄이 연기 혹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 결정까지 전격적으로 내려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선 공약을 하나씩 실행해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 대선후보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알아사드 공군기지 내 장병들에게 “(시리아와 달리) 이라크에 있는 미군은 이슬람국가(IS) 격퇴 임무가 중대하기에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의 미군이 철수한 뒤에는 필요할 경우 이라크가 IS와의 전쟁 기지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내놨다. 시리아 철군 및 이에 반대한 매티스 장관의 사임으로 뒤숭숭한 부대 분위기를 다잡는 동시에 분쟁지역의 전략 기지는 필요에 따라 유지시킬 것이라는 뜻을 밝힌 것. 이라크에는 5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다.


▼ 방위비 분담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발언 ▼

○3월 29일(오하이오주 리치필드 연설)
“한국에는 경계선(군사분계선)이 있고 군인(미군)들이 장벽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는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

○10월 11일(폭스뉴스 인터뷰)
“우리는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같은 부유한 나라들을 보호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돈을 주지 않는 끔찍한 군사계약(을 했다), 터무니없다.”

○12월 24일(트위터)
“우리는 전 세계 매우 부자인 나라의 군에 보조금을 주고 있는데, 이들은 미국 및 미국인 납세자들을 이용해 무역이익을 취하고 있다. 매티스 장군은 이걸 문제로 보지 않았는데, 나는 문제라고 보고 고치는 중이다!”

○12월 25일(장병들과의 화상통화 및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불이익을 보면서 부자 나라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지만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

○12월 26일(이라크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방문해)
“우리는 더 이상 ‘호구’가 아니다. 미국이 언제까지나 ‘세계의 경찰’이 될 수는 없다. (스스로를 방어할) 충분한 시간을 줬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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