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강경파 볼턴 배석 제외… 김영철 車까지 직접 배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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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영철 백악관 회동]72세 동갑내기 北손님 환대

두손 모은 김영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오른쪽)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전용 책상 의자에 앉아 있고, 김영철은 
맞은편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김영철 옆은 백악관이 북한 외무성 통역요원이라고 신원을 공개한 
김주성. 백악관 제공
두손 모은 김영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오른쪽)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전용 책상 의자에 앉아 있고, 김영철은 맞은편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김영철 옆은 백악관이 북한 외무성 통역요원이라고 신원을 공개한 김주성. 백악관 제공
6·12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1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면담 모습을 지켜본 미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미 정부가 북한에서 온 손님에게 이례적 의전을 제공했다”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을 마친 후 북한에서 온 동갑내기(72세·1946년생) 손님을 직접 차량까지 배웅하는 등 ‘특급 파격 의전’을 선보였다.

오후 1시 12분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가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 멈춰 선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김 부위원장이 조용히 하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건물 밖에 나와 기다리던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정중히 영접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오벌오피스로 안내했다. 김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달 30, 31일 뉴욕 고위급 회담에 동석했던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 마크 램버트 국무부 한국과장도 건물 안으로 함께 이동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약 90분간 진행됐다.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45분 동안 만났던 것에 비해 면담 시간이 2배가량으로 늘어난 것이다.

북한 측 인사의 옷차림이 18년 전의 군복에서 짙은 감색 양복과 넥타이로 바뀐 점도 눈길을 끌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차관은 “조 제1부위원장의 군복 차림은 ‘북한이 강한 군대를 갖고 있다’는 의미의 메시지였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북한의 국가 운영 시스템이 군 중심이 아닌 당 중심으로 전환됐음을 이번 김 부위원장의 양복 차림이 함축적으로 보여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면담이 마무리된 뒤 백악관은 면담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김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뒤 집무실 책상에 마주 앉아 대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부위원장이 들고온 친서를 개봉해 보기도 전에 “특별한 전달이다. 아직 읽진 않았지만 매우 기분이 좋고 흥미롭다”며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면담 자리에는 켈리 비서실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김 부위원장 측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여겨지는 대북 강경파 인사들은 배석시키지 않았다. 특히 국가안보회의(NSC) 사령탑인 볼턴 보좌관의 면담 불참은 이례적이다. 경색 국면에서 북한과 갈등을 벌인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배제해 미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핵 폐기 확인 후에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리비아 모델’을 주장해 지난달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에서 집중 공격 대상이 된 바 있다. 펜스 부통령 역시 지난달 21일 방송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 합의에 동의하지 않으면 북한도 리비아 모델처럼 끝장날 수 있다”고 발언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담화로 반격했었다.

면담이 종료된 뒤 집무동을 걸어 나오면서도 대화가 이어졌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김 부위원장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집무실을 빠져나와 이야기를 이어가던 트럼프 대통령은 환한 표정으로 김 부위원장을 바라보며 팔과 어깨를 한동안 수차례 가볍게 두드렸다. 면담을 통해 형성된 친밀감이 느껴졌다. 김 부위원장도 손짓을 더해 밝은 표정으로 화답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파격 의전’의 절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차량이 서 있는 곳까지 직접 김 부위원장을 배웅하는 장면이었다. 폼페이오 장관도 배웅에 동행했다. 김 부위원장은 김성혜 통일전선부 실장과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을 불러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면담 자리에 배석하지 않은 북한 측 수행원들을 일일이 불러 악수를 나누고 기념 촬영까지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김 부위원장 일행을 태우고 멀어져 가는 차량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NBC는 “김 부위원장에게 주어진 의전은 우방국에서 찾아온 최고위급 외교관에게 주어지는 방식이었다”며 “백악관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환대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만큼이나 북-미 관계가 좋다는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과시할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 부위원장은 백악관 면담을 마치고 1일 오후 9시경 뉴욕의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귀국길에 올랐다. 3일 오후 8시경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공항에서 잠시 중국 대외연락부 관계자를 만난 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함께 대사관으로 향했다. 4일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워싱턴=박정훈 / 베이징=정동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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