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30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의 콜렉티브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화재로 64명이 숨지자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출구가 하나뿐인 클럽에 수용 가능 인원을 초과해 400명의 입장을 허용한 것은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앞서 지난해 7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PSD)의 빅토르 폰타 총리가 탈세와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루마니아 현직 총리 중 처음으로 기소되는 등 유럽 최대 부정부패국이라는 오명에 시민들은 폭발했다. 4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정부 퇴진을 외쳤고, 결국 폰타 총리는 내각 총사퇴를 선언하며 물러났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이달 11일 총선에서 PSD는 압승을 거뒀다. PSD는 하원과 상원 선거에서 모두 득표율 약 46%를 얻어 중도우파 자유당(PNL)을 25%포인트 이상 앞섰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에 의해 쫓겨난 부패 정당이 재집권에 성공한 비결은 뭘까.
PSD는 유권자들의 호주머니를 파고들었다. 루마니아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5.2% 증가하는 등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은 빈곤계층으로 EU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꼽힌다.
PSD는 “이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눌 때”라며 최저임금을 비롯한 월급과 연금 인상, 복지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소득에 따라 10∼16% 세금 감면과 저소득층 세금 면제도 약속했다. 리비우 드라그네아 PSD 대표는 승리가 확정되자 “유권자들은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패 청산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도 PSD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한때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반(反)부패청(DNA)의 부패 청산 드라이브로 고위 공직자들이 수년째 법정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피로감이 누적됐다는 설명이다. 무리한 부패 청산이 경제성장을 막는 요인이라는 정치권의 홍보 전략도 통했다.
정치 컨설팅 회사 스마트링크의 라두 마그딘 디렉터는 FT 인터뷰에서 “국민들의 우선순위는 반부패가 아니라 일자리나 월급 등 정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느냐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DNA 소속 검사들 사이에선 “PSD의 승리로 부정부패 수사를 막으려는 의원들의 방패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총선은 끝났지만 후임 총리가 누가 될지는 오리무중이다. 승리를 이끈 드라그네아 대표는 2012년 트라이안 버세스쿠 대통령 탄핵 결정 국민투표와 관련해 선거법 위반으로 올 4월 징역 2년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루마니아 선거법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총리가 될 수 없다. 반부패를 기치로 올해 창당한 우파 루마니아 구국연합이 제3당에 오른 점에 비춰 볼 때 부정부패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제 심리는 여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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