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차례 암살위기 넘긴 카스트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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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IA, 옛애인 이용 독살시도… 폭탄시가-세균잠수복 계획도
쿠바 정보국 수장 1996년 책 펴내… 美상원서 일부 사실로 밝혀져
카스트로 “암살 살아남기 종목 올림픽에 있다면 내가 금메달”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다.”

 25일 타계한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말이다. 쿠바를 공산화한 것도 모자라 중남미 전역에 공산혁명을 퍼뜨리려 한 카스트로는 미국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그를 암살하기 위한 다양한 작전을 펼쳤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6일 카스트로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린 미국의 끈질긴 암살 시도의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카스트로는 모두 634차례의 암살 위협을 당했다. 이 숫자는 쿠바 비밀정보국 수장(首長)을 지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가 1996년 발간한 ‘암살계획-카스트로를 죽이는 634가지 방법’에서 나왔다. 카스트로 스스로도 634차례의 암살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기됐다가 중도 포기한 사례들도 많아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정부는 카스트로 암살 시도 자체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1975년 미 상원 특별위원회에서 CIA가 8차례 암살 공작을 벌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산화로 인해 쿠바 내 카지노와 각종 유흥 사업의 이권을 잃어버린 미국 마피아들도 카스트로 암살 공작에 가담했다.

 암살 계획의 단골 소재는 담뱃잎으로 말아서 만든 시가였다. 시가 마니아인 카스트로에게 폭탄이 장착된 시가를 건네 그의 얼굴을 날려버리겠다는 시나리오였다. 독극물을 묻힌 시가를 활용하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시가를 이용한 암살 시도는 1985년 카스트로가 금연을 선언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바다에 뛰어들어 조개를 캐낼 정도로 수준급 스쿠버 다이버였다. CIA 요원들은 조개 안에 소형 폭탄을 설치해 그를 죽일 계획도 세웠다. 피부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박테리아가 가득한 잠수복을 입히려는 음모도 있었다.

 가장 드라마틱한 시도는 카스트로의 전 여자 친구가 동원된 작전이었다. 19세에 카스트로와 만나 아이를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는 누군가에게 납치된 뒤 강제 낙태를 당한다. CIA는 복수심에 불타던 그에게 성공 보수로 200만 달러(약 23억6000만 원)를 약속하면서 “화장품(크림)통에 독이 든 알약을 넣어 카스트로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는 호텔방에 들어선 카스트로에게 암살 계획을 털어놓았다. 카스트로는 권총을 쥐여주며 “나를 죽이라”고 했지만 그는 차마 쏘지 못했다.

 카스트로의 위신을 깎아내리기 위한 황당한 시도들도 계획됐다. 카스트로의 트레이드마크인 풍성한 턱수염을 모두 빠지게 하려고 탈모 촉진 성분이 들어간 칼륨을 신발이나 옷에 뿌리거나, 라디오 스튜디오에 마약의 일종인 LSD를 뿌려 카스트로가 횡설수설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시행되진 않았지만 저항과 반미의 상징인 카스트로의 권위를 깎아내리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그만큼 강했다.

 카스트로는 살아남기 위해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던 습관을 없애고 자신처럼 변장한 ‘가짜 카스트로’를 활용해 암살단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또 쿠바 내에만 거처 20곳을 두고 여기저기 자주 옮겨 다녔다. 자신의 끈질긴 생명력을 농담 소재로 삼기도 했다. 한 지인이 ‘갈라파고스 거북이’를 애완동물로 선물하겠다고 하자 “100년밖에 못 살지 않느냐. 온갖 애정을 다 쏟아도 나보다 먼저 죽는다”며 거절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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