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반기문 대선 상륙작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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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潘총장 방북 앞, 들썩이는 정치권]

‘반기문 상륙작전’이 임박했다. D데이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연말 또는 연초가 유력해 보인다. 상륙 지점은 북한의 수도 평양.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후 수도 없이 타진해 왔던 평양행 비자에 스탬프를 찍을 기회가 무르익고 있다. 유엔 수장에게 마지막으로 문호를 개방한 것이 1993년이니 22년 만의 일이 된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는 첫 해외 정상급 인사가 될 가능성도 높다.

평양 상륙작전 1년 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2차 작전이 시작된다. 70억 자구촌의 난제를 다루는 탓에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the most impossible job)’이라고 불리는 총장직을 10년 동안 대과 없이 마무리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그는 2017년 대선 레이스를 강타할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반 총장의 방북 카드는 ‘반기문 대망론’을 구체적 시나리오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그가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유력 변수(變數)를 넘어 상수(常數)가 됐다고 단언한다.

반 총장의 국내 최측근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한국인으로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총장직 9년의 과정을 거쳐 그가 세계 최고지도자급(world-class leader) 인사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유엔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다른 인사도 “본인 성격상 퇴임 후 손자나 보면서 소일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국가를 위해 더 큰 기여를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에 대한 소명의식을 반 총장 정치 참여의 대의명분으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반 총장 본인은 여전히 정치와는 선을 긋는다. 관심도 없고 너무 바빠 관여할 여력도 없다는 것이 반 총장의 공식 해명이다. 하지만 반 총장은 본인 입으로 “나는 차기 대선에 나갈 생각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도 바쁘다. 특히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나 야당 비노(비노무현)계는 지속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친박 핵심 인사는 “20대 총선이 끝나고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내년 5∼9월을 주목하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뉴욕 유엔본부와 여의도 정치권, 청와대, 그리고 반 총장의 국내 측근 그룹들을 밀착 취재했다.


▼ 대선 맛본 친박-친노 일각, 서로 뒷주머니에 ‘반기문 카드’ ▼


9월 26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새마을 운동 고위급 특별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의 인사말을 들으면서 박수를 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대통령 취임 이후 매년 두 차례 이상 서울과 뉴욕 
등에서 반 총장을 만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9월 26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새마을 운동 고위급 특별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의 인사말을 들으면서 박수를 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대통령 취임 이후 매년 두 차례 이상 서울과 뉴욕 등에서 반 총장을 만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 이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묻겠습니다. 반 총장 임기가 2016년 12월에 끝나 시간상 다음 대선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장.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물었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묻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야 정치인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면서 꺼낸 얘기였다. 1년 전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이 누리던 인기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여야, 경쟁적으로 반기문 대망론 불지피다

공식 석상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거론된 첫 순간이었다. 김 의원의 질문에 당시 유기준 외통위원장은 “미주 국감에 가 반 총장을 만나 대선에 대해 물어보니 ‘정치에 몸담은 사람도 아닌데 잘 알면서 왜 물어보느냐. 몸을 정치 반, 외교 반 걸치는 것은 잘못됐다. 안 된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총장 임기가 끝나면 차기 대선에 나서겠다는 뉘앙스로 해석했다. 친박계는 기름을 부었다. 이틀 뒤인 10월 29일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반 총장의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집중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포럼 간사였던 유기준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17년 대권지형 분석’이라는 주제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에게 기조 발제를 맡겼고, 이 대표가 여러 변수를 살피는 발제를 하는 과정에서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이 튀어나온 것이 일이 커졌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포럼에는 서청원, 홍문종, 김태환, 안홍준, 윤상현 의원 등 친박 주류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고 정치권에서는 친박이 조직적인 ‘반기문 띄우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5일 뒤에는 야당도 반기문 대망론에 가세한다. 새정치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은 당시 “반 총장의 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와서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공개했다. 실제로 2013년 8월 당시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는 충북 충주시에서 열린 세계조정선수권대회 개막식을 찾아가 반 총장을 만나 그에 대한 야당의 관심을 전달했다.

야권 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했던 원조 친노 그룹이 친문(문재인) 그룹에서 분화해 반기문 옹립을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해찬 전 총리와 노 전 대통령의 ‘우(右) 광재’로 불렸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몸담고 있다고 한다.

사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반 총장을 옹립하는 킹메이커를 꿈꾸기도 했다. 성 회장은 자신이 주도하는 충청 출신 명망가 3500여 명의 모임인 ‘충청포럼’을 통해 충청대망론을 꿈꿔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은 자신이 반 총장 당선의 일등공신 중 하나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누가 潘을 돕는가

정치권에는 고위 외교관, 충청권 인사, 전직 국회의원 등을 중심으로 ‘반기문 자문그룹’이 형성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반 총장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반 총리 장녀 결혼식의 주례를 맡기도 했던 한 전 총리는 차관에서 물러난 직후 오갈 곳이 없던 반 총장에게 외교안보연구원에 방을 마련해 주고 국회의원 신분으로 배정받은 차량을 내주기도 하는 등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의 언니인 육인순 혜원학원 설립자의 딸이 한 전 총리의 부인이기도 하다.

외교관 그룹에서는 김원수 유엔 군축 고위대표 대행이 최측근으로 꼽힌다. 반 총장이 외교부 장관 시절 특보를 지냈고 반 총장 취임과 함께 총장비서실 차장, 총장특별보좌관를 역임하며 반 총장의 그림자 실세가 됐다.

하지만 아직 정치권에 조직적인 참모 그룹이 형성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핵심 의원은 “그런 그룹이 있다 해도 반 총장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기보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지지 그룹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 총장 재임 시절 유엔대사를 지낸 박인국, 김숙 전 대사와 오준 현 유엔대사 역시 측근 그룹의 핵심으로 꼽힌다. 반 총장이 총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됐을 때 그를 실무적으로 보좌한 문하영 주체코 대사, 김봉현 주호주 대사, 윤여철 외교부 의전장 등도 친분이 두텁다.

뜻밖의 낙마… 우연히 찾아온 반전의 기회

반기문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놓은 일대 사건인 총장 등극 과정을 살펴보자. 외교부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 ‘반(潘)의 반(半)’만 하라는 것. 그만큼 외교관으로서의 반기문은 탁월했고 1970년 입부 이래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2001년 2월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미국과 러시아 정부가 1972년 맺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과 관련된 우리의 대응으로, 반 총장은 영원히 공직과 이별할 뻔했다.

사연은 이렇다. 새로 출범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열흘 정도 앞둔 시점에 서울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과 러시아는 ABM 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라는 내용이 담긴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하지만 국가미사일방어(NMD) 체계를 구축하려 했던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 한국의 ABM 인정은 노골적 러시아 편들기로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3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을 설명하면서 김정일을 지도자로 인정할 것을 호소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엉뚱하게 희생양이 된 사람은 반기문이었고 관가에는 “반기문은 끝났다”는 말이 퍼졌다. 마음고생 탓에 몸무게가 10kg 이상 줄었다고 한다.

반전의 기회는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ABM 사태 직후 외교통상부 장관이 된 한승수 전 총리가 유엔총회 순번제 의장(2001년 9월∼2002년 9월)으로 선임된 것. 한승수는 주미대사시절 공관에서 같이 일했던 반 총장을 총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훗날 반 총장은 한 전 총리를 유엔기후변화특사로 발탁하면서 보은(報恩)한다.

결과적으로 반 총장의 총회의장 비서실장 경력은 훗날 총장에 당선되는 데 커다란 밑거름이 된다. 중앙일보 남정호 기자가 펴낸 책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에 따르면 반 총장은 당시 주유엔대표부 임시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대외 활동을 시작해 유엔 주재 각국 대사들과의 만남을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고 한다. 한 달 만에 180여 개 유엔 회원국 중 120여 개국 대사와의 면담을 마친 것인데 주말을 빼면 하루 평균 6개국 대사를 만난 꼴이다.

노무현 정부 회심의 카드 반기문

이후 반 총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외교보좌관(차관급)에 발탁돼 화려하게 컴백했고, 자주파(노 대통령의 386참모)와 동맹파(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외교부 관료 그룹)의 대결 구도 속에 낙마한 윤영관의 후임으로 외교부 수장이 된다. 반기문의 ‘컴백’에는 당시 대통령정무수석이던 새정치연합 유인태 의원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이며 반 총장은 충북 음성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등을 제외하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미주 등 4개 지역이 돌아가며 맡는 관례가 있는 만큼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국이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됐던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일찌감치 낙마했고 한승수 전 총리에 대한 논의도 흐지부지됐다.

결국 선택은 반기문이었고 2005년 10월경 이후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수행하는 기회를 십분 활용해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선거전이 한창 진행될 때 노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현직을 떠나 선거운동에 전념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지만 반 총장이 단호히 거절했다. 역대 유엔총장 중에 현직 장관이나 유엔 대사 등의 직을 유지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결국 반 총장은 2년 10개월을 재직해 역대 최장수 외교부 장관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반기문은 2006년 10월 4차 투표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다.

반 총장 필생의 과업, 방북

반 총장에게 북한은 특별하다. 총장을 선출하는 유엔 안보리 본회의가 소집된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차기 유엔 총장 당선자이면서 한국의 외교사령탑인 반 총장에게 주어진 첫 임무가 된 것. 북한은 2009년과 2013년 추가적인 핵실험 도발에 나섰고 반 총장은 그때마다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로 대응했다.

유엔 소식통은 반 총장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이렇게 전했다.

“북한도 반 총장 취임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반 총장 취임 뒤 대북제재가 오히려 대폭 강화된 것에 대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도와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관영 통신 등을 통해 ‘미제의 앞잡이’ 등 인신공격하는 성명이 종종 나오는 것은 그 같은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반 총장이 방북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2009년 7월 유엔본부 기자회견에서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으며 평양을 방문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 것. 이 발언은 여전히 유엔본부가 사용하는 반 총장의 방북 관련 ‘공식 코멘트’다.

실제로 당시 반 총장과 북한 간에는 구체적인 방북 날짜까지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톰 플레이트 ‘반기문과의 대화’ 192∼194페이지). 하지만 북한은 이틀 전 급작스럽게 그의 방북을 취소했고 그 이유는 김정일의 뇌중풍(뇌졸중) 악화 탓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5월 개성공단 방문은 이례적으로 공개적으로 추진됐다. 뉴욕 북한대표부와 사전 조율을 거친 뒤 청와대와 일정도 상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당시 방북 예정일 하루 전에 반 총장의 방북을 취소했다. 반 총장으로서는 두 번째 ‘퇴짜’를 맞은 셈이다.

▼ 潘총장 선출 굳힌 날 핵실험 한 北… 임기말에 손 내밀어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과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10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유엔 제공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과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10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유엔 제공
이번 방북 성사는 시간의 문제로 보인다. 반 총장의 진짜 고민은 방북 성사보다는 오히려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과의 만남 성사가 필수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주제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느냐가 역사적인 방북의 성패를 가늠할 척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반기문 측근 그룹은 “어차피 두 번 갈 수는 없는 것이니 북한에 이용당하지 않고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중요한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출신 한 인사는 “결국 최대의 성과는 남북 정상회담 중재 아니겠느냐”고 했다.

반 총장은 22일 아세안(ASEAN) 정상회의가 열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기로 했던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방북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나서는 것이 껄끄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모태 여권’ vs 야권이 키운 인물


반 총장은 죽기 살기로 노력한 끝에 총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지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반 총장과 친분이 두터운 한 인사는 “반 총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야권에서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몰아붙인다면 총장 선출과정에서의 스스로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 야권에서는 공직 생명이 거의 끝난 반 총장을 기사회생시켜 총장후보로 만든 뒤 노무현 정부가 정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반 총장이 탄생할 수 있었겠느냐는 시각이 강하다.

하지만 여권은 시각이 다르다. 그의 정치적 지향을 고려하면 당연히 ‘모태(母胎) 여권인사’라고 보는 것. 특히 새누리당 친박계의 경우 현재 차기 대선주자들이 김무성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모두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인 데다 김 대표의 입지가 공고해져 가는 상황을 고려할 때 ‘대안’이 절실하다.

반 총장과 친분이 있는 한 의원은 “충청표에 새누리당 성향의 영남표를 결집할 수 있고, ‘안철수 현상’을 낳은 젊은층과 중도층 표를 흡수하면서도 안철수와 비교할 수 없는 경력과 경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 총장의 직통 휴대전화 번호를 가지고 1년에 몇 차례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최근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 불을 지피면서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론’을 들고 나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홍 의원은 당 사무총장인 2013년 5월 반 총장의 측근을 통해 “반 총장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發 정치권 빅뱅론

하지만 김 대표 측은 반 총장의 방북설이나 친박계에서 불거진 개헌론에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내심 불쾌한 표정도 역력하다. 반 총장을 지렛대 삼아 ‘김무성 흔들기’를 하려는 의도가 불순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비박계 측에서도 반 총장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게 된다면 김 대표로서 불리할 것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 경험도 조직력도 없는 반 총장이 치열한 경선 과정을 이겨낼 수 있겠냐는 시각이다. 한 여권 인사는 “장외에 있을 때와 정치권이라는 ‘정글’로 들어온 뒤는 상황이 확연히 달라진다”며 “때로는 지저분하기까지 한 검증 공세를 과연 반 총장과 그 가족이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편집자 주: 반 총장 측에서는 “대한민국 정치 풍토로 볼 때 추대 형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안다. 꽃가마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반 총장이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들어온다면 우리로서도 ‘생큐’”라며 “야당은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나와 시끌벅적 경선을 하는데 반 총장이 참여할 경우 모든 관심이 새누리당으로 쏠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른바 ‘컨벤션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빅뱅에 관한 전망도 나온다. ‘반기문 대망론’이 반 총장이 퇴임하는 내년 12월까지 여전히 힘을 발휘할 경우 현재의 여야 구도가 아닌 제3지대에 반 총장을 중심으로 여러 세력이 결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재선 의원은 “새정치연합에서는 친노(친노무현) 인물보다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게 낫다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의 여야 구도에서 ‘헤쳐 모여’가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했다.

문제는 반기문의 권력 의지


아직 반기문 카드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임박한 내년 4월 총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적인 데다 그의 총장 임기도 1년 1개월 남짓 남았기 때문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반 총장은 숨겨 뒀다가 결정적 시기에 내놓아야 하는 카드”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다른 중진 의원도 “현재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는 없지만 친박계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맞다. (언론도) 지켜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반 총장의 진짜 정치행보는 새 사무총장의 윤곽이 드러나는 내년 4월에서 9월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이 정치참여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유엔 안팎에선 “총장이 임기 마치면 한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면서…” 하는 얘기가 더욱 만연해졌다고 복수의 유엔 관계자들이 전했다. 기자가 최근 유엔에서 만난 러시아의 한 외교관조차 첫 인사가 “반 총장이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되는 건가요?”라는 질문이었다.

뉴욕 유엔본부에 있는 반 총장 주변 사람들의 생각도 복잡 미묘하다. 요약하면 ‘반 총장이 정치에 뜻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반 총장이 대통령 될 수만 있다면 나쁠 것도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반 총장 부인(유순택 여사)은 진심으로 반 총장이 정치하는 걸 반대하는 것 같더라. 그러나 반 총장은 일이 없으면, 그것도 온몸을 불사를 ‘큰일’이 없으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는 반 총장 오랜 지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반기문에게 ‘대단히’ 호의적이라는 사실은 반 총장의 도전에 호재인 것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2013년 대통령 취임 이후 매년 두 차례 이상 정기적으로 반 총장과 독대하고 있다. 9월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기간에는 나흘간 7차례나 만남을 가졌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형성과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 어젠다와 반 총장의 한반도 평화구상이 윈윈하는 접점에 반 총장의 방북 카드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통일을 이루는 결정적 요인은 남북교류가 아니라 외교라는 말이 돈다고 한다.

반기문 상륙작전의 성패도 결국은 그의 권력의지에 달려있을 것 같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홍수영 기자 / 뉴욕=부형권 특파원
#반기문#대선#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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