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미래 이렇게 열자’ 전문가 대담 <상>
오구라 가즈오 일본국제교류기금 고문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 70주년 광복절이 지났다. ‘아베 담화’도 나왔다. 중요한 것은 이제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동아일보는 ‘한일관계 미래 이렇게 열자’란 주제로 전문가 연속 대담을 싣는다. 첫 회 주인공들은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83·전 주일대사 및 외무부 장관·이하 공)과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77·이하 오구라) 일본국제교류기금 고문(전 주한 일본대사)이다. 대담은 오구라 전 대사가 방한했던 6월 14일 오전 서울에서 있었다. 추후 수차례 서면답변을 받아 진행됐다. 》
6월 한국에 잠시 온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왼쪽)와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이 만나 한일 관계의 미래를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제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자”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요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양국의 우정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그렇지 않다”고 말씀해 오셨지요.
▽공=저는 한일관계가 ‘나쁘다’란 표현보다 저점(低點)을 지났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은 거지요(웃음). 일본을 비판만 하기보다 우리가 좀 더 아량과 포용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소위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내건 아베 신조 정권은 일본의 보통 국가화, 특히 평화헌법 9조(전쟁포기 조항)에 대한 수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 정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많은 국민은 평화헌법이 지향하는 국제평화주의 노선을 지지합니다.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1995년)는 일본 국민의 보통 정서를 대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구라=기자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웃음) TV나 미디어가 자꾸 “일한 관계가 나쁘다 나쁘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역이나 관광객 수치로만 봐도 점점 교류량이 늘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는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이 진보해 왔습니다. 1970년대에는 일본대사관에 한국인이 방화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돌이 날아왔고 이제는 계란을 던집니다. 불에서 돌로, 돌에서 계란으로 바뀌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 아닙니까.
여론조사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를 싫어한다고 답하는 비율이 높다고 나오는데 과연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한국이 싫다고 말하는 일본인들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일종의 ‘안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안개가 끼어 있으니까 빛이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안개를 제거하면 실제로는 빛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된 데는 여러 가지 변화된 국제 정세가 한몫했다고 보는데요.
▽오구라=저는 세 가지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위치를 굳혔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분명 옛날과 달라졌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둘째는 중국의 부상입니다. 중국이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매우 커졌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일본과 한국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사회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한쪽에서는 안전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평화롭고 조용한 일본’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일본이 제대로 힘을 내서 세계 안에서 좀 더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본 스스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고 한국 쪽에서도 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4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아베 담화가 나왔습니다. 자기반성이 없는 과거형 물타기 사과였다는 것이 한국 내 중론입니다만….
▽공=저 역시 담화를 보고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인 만큼 저는 감히 ‘이제 우리도 사죄에서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베 총리가 비록 우리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아 성에 차지는 않지만 무라야마 등 역대 일본 총리들의 역사 인식을 흔들림 없이 계승하겠다고 말한 대목은 유념해 들을 만하다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일본의 다각적인 면을 이해하자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국제질서하에서 한국이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보자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키는 180cm 정도인데 2m 거인들 속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감정보다는 이성에 입각한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오구라=무라야마 담화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사죄도 있었지만 일본 국민에게도 사과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일본인 중에서도 전쟁과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입고 반대한 사람이 많습니다. 전쟁과 식민지 문제는 나라와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과 삶을 바꾼 문제입니다.
▽공=지금 동북아의 국제 정세를 살펴봅시다. 한국은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지만 역량이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동아시아라는 곳은 한국-일본-중국 3개국이 가장 큰 멤버입니다. 평화와 안정의 시대도 있었지만 분열과 전쟁의 시대도 있었습니다.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가 큰 전쟁을 일으켜 동아시아는 혼란과 고통을 겪었지만 크게 보면 어느 나라도 과거의 시선으로만 볼 때는 좋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유럽에서 나오는 지역공동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동북아시아도 지역공동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대결’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합니다. 한국 혼자 중국과 이야기하는 것은 힘에 부칩니다. 일본도 중국과는 라이벌 의식이 있기 때문에 혼자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때 한국이 필요합니다.
동북아, 세계 평화를 위해 한중일 3국이 협력해야 하는 이슈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부터 에너지,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오구라=좋은 말씀입니다.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무역 수치를 봐도 그렇고요. 그러나 정치체제는 다릅니다. 정치체제를 똑같이 만든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환경, 에너지, 인구 문제 같은 당장의 공통 이슈에서 협력해 나가는 게 현실적입니다. 3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들을 풀기 위해 포럼을 만들고, 의논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본 국민도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금까지 문제는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해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본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한일 모두 각자 국가적 정체성(내셔널 아이덴티티)을 세운 뒤 서로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50년 전 한일 수교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시지요.
▽공=광복이 되고 20년 만에 일본과 수교를 맺었으니 당시 반일감정이 어땠으리라고는 상상이 가지요? 청와대에서 한일 수교 관련 장관회의를 했는데, 그때 제가 사무관이었습니다. 두루마리 차트로 대통령께 보고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저는 옆에서 막대기로 차트를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 보고가 끝나고 나서 박정희 대통령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한일 협정…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방법입니다. 국가경제 건설이 최선 아닙니까. 미국 원조는 줄고 외국 차관은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만약 우리가 지금 잘못한 것이 있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평가를 맡깁시다.” 참석한 장관들의 표정이 모두 숙연했습니다.…‘저자세 외교’ ‘굴욕 외교’ 소리를 들었지만 만약 그때 수교를 안 했더라면 나중에 언제 가능했을까 생각해볼 때 박정희 대통령이 새삼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구라=수교가 이뤄진 50년 전만 해도 일본인들 중에 “한국은 일본 때문에 근대화됐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 이런 말을 하면 일본 사람들도 수긍하지 않습니다. 국교 정상화로 양국이 그만큼 가까워졌고 국민 인식을 바꿔놓은 거지요. 한일 국교 정상화는 옳은 길이었습니다.
한일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경제 교류뿐만 아니라 지적(知的) 교류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와 ‘채식주의자’(한강) 같은 한국 현대소설을 한국어로 읽고 있는데 현대 한국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소설들이 일본에도 많이 번역되었으면 합니다. 또 중요한 사람들이 젊은이들입니다. 최근 한일 간에 유학생들이 줄고 있는데 고교생, 대학생들의 교류를 늘리는 것은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를 보는 것은, 왜 과거를 보는 것일까요? 미래를 보기 위해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 약력 ::
오구라 가즈오
일본 외무성 북미과장 동북아과장 외무심의관(차관급)을 거쳐 1997∼1999년 주한 일본대사로 일한 일본 외교 현장의 산증인이다. 판소리를 배우고 한국 소설을 읽는 지한파 인사다. 한일 간 경제협력 교섭을 둘러싼 비화를 담은 ‘100억 달러의 비밀’(한국어판)을 펴냈다.
공로명
브라질 러시아 일본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을 거쳐 제25대 외무부 장관(1994∼1996년)을 지내며 38년간 외무부에서 일했다. 동서대 석좌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한국 외교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며 지난해 50년 외교 인생을 정리한 ‘나의 외교노트’(기파랑)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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