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前 영국총리 “좌파, 이젠 과거와 이별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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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로 3연속 집권 블레어 前 영국총리, 강경좌파 득세 노동당에 일침
“낡은 공약으론 더이상 집권 못해… 세상의 변화속도는 새 생각 요구
중도-기업 지지 얻어야 승리 가능”

“제발 과거로 돌아가지 마라. 앞으로 나아가라. 낡은 좌파 공약으로는 노동당이 더이상 승리할 수 없다.”

국유화, 소득 분배 같은 전통적 좌파 공약을 과감히 버리고 우파의 가치관을 포용하는 ‘신(新)노동당’ 노선으로 세 차례 연속 총선에서 승리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재임 기간 1997∼2007년·사진).

그가 올해 5월 총선에서 참패한 뒤 사퇴한 에드 밀리밴드 당수의 후임을 뽑는 노동당 당수 경쟁을 유심히 지켜보다 쓴소리를 던졌다.

9월 열릴 당수 경쟁에서는 현재 후보 4명이 난립하고 있다. 이 중 강경 좌파로 꼽히는 제러미 코빈 의원(66)이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유거브는 결선투표에서 코빈 의원과 2위인 앤디 버넘 의원(45)의 득표율이 각각 53%, 47%로 예상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블레어 전 총리는 22일 싱크탱크 ‘프로그레스(Progress)’가 주최한 모임에서 “노동당은 중도로 가야 승리할 수 있다. 광범위한 중도층에 호소하면서 노조는 물론이고 기업을 지지할 때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당이 1980년대식 좌파 공약으로 돌아간다면 향후 20년간 정권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블레어 전 총리는 이날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한 것과 관련해 “(1960, 70년대를 풍미했던 SF) 영화 ‘스타트렉’을 보는 듯한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늘날 세상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빨라 새로운 생각을 요구한다. 또 설령 ‘강성 좌파’ 공약이 선거에서 승리를 가져온다 해도 나는 그것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1979년 총선 이후 노동당이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에 4번 연속 선거에서 진 이유도 노동당 스스로가 ‘순수한 좌파’를 고집했기 때문”이라며 “(노동당은)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 안주하려는 충동을 거부하고 제발 미래로 나아가라”고 호소했다. 이어 현재 당수 경쟁에서 앞서고 있는 강성 좌파인 코빈 의원을 거론하며 “아마 보수당은 코빈이 당수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왜냐고? 쉬운 상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블레어의 말에 대해 노동당 몇몇 의원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블레어 총리 시절 총리 자문직을 지냈던 트리스트럼 헌트 의원도 “코빈 의원은 ‘영국의 시리자’(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라 했고, 노동당 대런 머피 의원은 “코빈이 당수가 되는 것은 ‘노동당의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코빈 의원은 공공부문 노조단체인 옛 전국공무원노조(NUPE)의 상임 활동가로 일한 노조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당수가 되면 100억 파운드(약 18조 원)를 조성해 대학 수업료를 면제하고 서민층 가정의 대학생에게 생활보조금으로 주는 교육 지원금을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재원은 연소득 5만 파운드 이상인 부유층의 국민보험(NI) 부담금과 법인세 인상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영국 내에서도 부자 증세를 통한 퍼주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편 코빈 의원은 블레어 전 총리의 이날 연설에 대해 “노동당이 선거에 진 건 너무 좌측에 있어서가 아니라 긴축에 찬성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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